‘분청사기’ 재현하는 도예가 ‘민영기’

산청시대 2020-09-04 (금) 14:48 21일전 93

탈속(脫俗)의 아름다움, 분청사기(粉靑沙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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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기 선생이 재현해 낸 분청사기


1973년 일본 유학, 5년 뒤 귀국‥옛 도요지 터 잡아
23년 만에 일본서 첫 사발 전시회‥매스컴서 ‘호평’
“일본 도예가들 못 만드는 찻사발 꼭 만들겠다” 결의

 

“1978년 8월 어느 여름 날 천혜의 요새에 운명으로 자리 잡은 터. 손, 불, 흙의 예술이 자연처럼 펼쳐지는 터. 마음을 비우고 물레를 돌리며 가마에 장작을 지피고, 백토를 숙성시키는 대가가 살고 있는 터.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터. 운명처럼 맺은 인연으로 온전히 곰삭은 터. 대가의 손은, 가마의 불은, 산청의 흙은 이 터에서 언제까지나 늘 그렇게 있을 것이다.”

웅석산 아래 경호강가 ‘산청요’(山淸窯)는 임진왜란 이후 맥이 끊긴 우리 분청사기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분청사기는 회색 또는 회흑색의 태토(胎土) 위에 정선된 백토로 표면을 분장한 뒤, 유약(釉藥)을 씌워 환원염(還元焰)에서 구운 조선 초기 도자기로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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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기 선생

15~16세기 ‘도요지’ 있던 단성면 방목리
민영기(閔泳麒) 선생은 산청읍 병정에서 태어났다. 1973년 우리나라 전통도자기 기술 환원이라는 목표로 일본에 국가장학생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5년 뒤 귀국하고 이듬해 단성면 방목리에 터를 잡았다.
‘산청요’로 진입하는 단성면 수산다리는 1983년 가설되었기에 그 당시는 나룻배로 강을 건너야 했다.
그는 왜 이곳에다 자리를 잡았을까? 단지 산청이 고향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임진왜란으로 도공들이 일본으로 모두 끌려가면서 분청사기 맥이 끊어지기 이전인 15~16세기까지 여기는 도요지였다.
그는 아내에게 “20년만 실험하면 세계에서 아무도 만들지 못하는 도자기를 만들 것이고, 그때는 ‘산청요’에 세계 사람이 올 것이다”고 각오를 밝히며 동의를 얻어냈다는데서 사라진 분청사기 재현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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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 각광받은 찻사발

동경국립박물관 도예실장 격려에 큰 힘
민영기 선생은 어느덧 10년이 지나고, 1990년 일본 도쿄 주일한국대사관 문화원 합동전시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당시 동경국립박물관 도예실장이던 하야시아 세이조 선생이 “더욱 더 열심히 해라. 만약 민영기가 일본인이 못 만드는 찻사발을 만들면 도쿄에서 전시회를 열어주겠다”는 격려의 말에 그는 큰 힘을 얻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일본의 도예가들이 만들지 못하는 사발을 기필코 만들어서 일본사람들의 기를 꺾고 역시 한국 사람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3월1일 출국해 8월15일 입국 택해”
“비록 우리 분청의 맥이 끊겨 일본으로 배우러 갔지만 우리의 사발과 분청에는 우리의 혼과 기가 들어있기 때문에 우리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일본을 갈 때 힘들게 여권을 만들고 떠나는 날은 3월 1일로 잡았으며, 귀국은 8월 15일을 택했다”

그가 50년 가까운 시간을 온전히 분청에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이 정신 때문이 아닌가 싶다.
분청에 혼을 쏟아 부은 23년 만에 일본에서 첫 사발전시회를 가졌는데, ‘일본에서는 이렇게 만들 사람이 없다’는 호평을 받으며 그동안 힘들었던 과정이 한순간에 다 사라지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분청은 탈속으로 신의 경지에 오른 것’
분청은 내면의 미(美)로, 기법이 아니라 정신이다. 도자기를 배우며 스승에게 “정신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할 정도로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는 신비스러움이 있다. 그러나 ‘종이 한 장만큼 높여라. 종이 두 장만큼 맞춰라’고 하는 세밀함이 있어야 된다.
흙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을 문양, 형태, 질감으로 표현하는데, 만약 내면의 미가 없다면 쉽게 싫증이 난다. 피카소의 그림이 관념의 파괴라면 분청은 탈속으로 신의 경지에 오른 것이라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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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요 전경


아들 범식씨, 분청의 맥 계승하고 있어 
민영기 선생의 아들 범식씨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17년 전 아버지를 스승으로 삼아 분청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3개월 전에 문을 열었다는 ‘산청요’ 카페는 평일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카페를 개업하기까지 아버지를 설득하는데 고생을 많이 했다고 했다.
범식 씨는 카페를 열고, 전시실을 상시 개방하고, 전시실 2층에는 체험관을 만들어 ‘산청요’의 ‘분청사기’가 일반인들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산청요’는 산청 정신이자 시대정신, 전통을 이어가는 계승 정신이 어우러진 예술 혼이 남은 곳으로 평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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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요 카페
찾아오는 길 : 산청군 단성면 강누방목로 499번길 106-5  ☎ 055-972-8585
대담 : 민영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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