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선비의 표상, 송재 김신수 원임 전교

산청시대 2023-01-26 (목) 06:29 1년전 424

“각자 위치에서 제 몫을 충실히 다하는 사람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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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 김신수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과 6.25 등 격동의 시기와 처절한 보릿고개를 넘어 오뚜기처럼 일어선 역전의 용사가 있으니 송재(松齋) 김신수(金信秀) 원임 전교다.
그는 1941년 금서면 자혜리에서 태어나 금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춘천(春川) 민(閔)선생 문하에서 명심보감과 통감, 소학을 배웠다.
이후 늦은 나이에 경호중학교를 입학했으나 농사철이면 부친의 신병으로 농사일을 돌보기 위해 연 2개월 이상 결석을 했으나 우등으로 졸업했다. 이어 농사일과 함께 여암(?菴) 정(鄭)선생 문하에 입문하여 14년 동안 <격몽요결>과 <사서>(논어·대학·중용·맹자)를 익혔다.
면사무소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1965년 서하출장소장으로 재임하면서 관내 500여 호에 200여만원의 사비를 들여 문패를 제작 보급한 바 있고, 1981년에는 경상남도 모범공무원에 선발되기도 했다.
부면장으로 공직에서 나온 뒤 산청향교에 입문해 유도회 총무와 감찰을 거쳐 산청향교 유도회장과 전교(典校)를 지냈다. 한학을 전공한 그는 현재 산청향교에서 후학 유림에 훈장으로서 경전을 강의하며 윤리 도덕성 회복과 인성 함양에 매진하고 있다.
참혹한 역경을 극복하고 유림의 지도자로서 우뚝 선 그를, <유교 경전> 강의가 한창인 산청향교 명륜당에서 만났다.

-차황면 효산서원에 대해 설명한다면.
“효산서원(孝山書院)은 1980년 초에 후손인 김세환 씨가 지역유림의 도회를 거쳐 창건했다. 주벽에는 고려 말 두문동 72현이신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 선생을 모시고 좌우에는 삼묵재(三?齋)와 퇴재(退齋) 선생을 배향하고 매년 양 5월 5일에 유림이 향사를 받들고 있다. 특히 상촌 선생은 여말(麗末) 충신으로 지조를 지켜 세인들이 칭송하는 절신(節臣)이다.”

-공직 이후 유림과 서예 활동은.
“향교에 출입하다 보니 유림활동은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는데, 많은 서원에 축관과 집례 근래에는 헌관으로 추천받아 헌작하고 있다. 더불어 한시(漢詩)회에도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또 2003년부터는 3년 동안 청학동 예절학당 훈장으로서 후학을 지도했다. 서예를 연마하기 시작해 2009년에는 산청문화원 전시실에서 진주와 산청의 많은 유림들이 모인 가운데 서예대전을 성대하게 열었고, 이때부터 5년간 덕산 및 진주문화원에서 서예지도 강사를 역임한 바 있다. 이후 덕산서실과 진주문화원 서실에서 서예지도 강사를 7년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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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경력이 있을 것 같다.
“2002년에는 도전(道展)에 입선하고 다수의 특선과 우수상을 받았다. 2011년에는 한국예술대전 3체 특선, 한석봉 예술대전 우수상을 수상하고, 2015년에는 진주향교에서 실시한 전국한문경전성독대회에 3년간 출전하여 참방, 차하, 차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완성한 번역문집이나 집필 서적.
“어릴 때부터 붓을 잡았으며 문집으로 남기지 않으면 민멸 되어버릴 자료를 모아 <덕산재지>(德山齋誌)를 출간했다. 또 <효렬천장역간>(孝烈薦狀譯刊)과 <침성재지편간>(枕聲齋誌編刊), <송재총고간행>(松齋叢稿刊行) <가승보>(家乘譜) 등을 간행했다.”

-위선 사업에 대해서는.
“6.25 사변 통에 양민학살사건 등 격동의 시기를 맞아 실묘한 선대 묘소를 찾아 이장하고 5대 조비 효열비를 세웠고, 부모로부터 5대를 한 벌 안에 합분으로 모시고 2015년에는 효열천장문(孝烈薦狀文) 20매를 경남문화재 제592호로 등재한 후 밀양의 미리벌 민속박물관에 위탁관리하고 있다.”

-좋아하는 좌우명이나 경전 구절은.
“평소 즐겨 강조하는 말씀 중에 ‘인부지이 불온’이면 ‘불역군자호’아(人不知而 不?이면 不亦君子乎아) 라는 <논어> 구절이 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이 자기의 수양보다는 너무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라며, 남에게 과시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다. 즉 학문을 하는 사람도 위기지학(爲己之學)보다 위인지학(爲人之學)에 치우치는 사람도 많은데, 내가 학문을 수양하고 열심히 하는 것은 내 몫이지만,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는 것은 남의 몫인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또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란 말도 애용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직분에 벗어난 언행을 하는 경우가 있기에, 각자의 위치에서 제 몫을 충실히 다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 자신부터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다.
“산청은 예부터 선비의 고장이다. 그러나 협소한 명륜당에서 선비들이 공부하기에는 매우 열악한 환경이다. 더구나 겨울이면 난방시설이 안 되어 공부하는데 애로가 많았다. 그러나 다행히 산청군청에서 유림회관을 건립하고 있으니 만시지탄의 감이 있으나 매우 잘된 일이다. 앞으로 유림회관이 완공되면 초중고 학생들의 인성교육과 선비 유림의 강학 장소로 활용하여 옛 이름에 걸맞은 선비의 고장답게 선비를 양성하여 예의와 염치가 되살아나고 도덕성이 회복되어 건전한 사회를 이룩하는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
“향교 전교를 지낸 사람으로서 바람이 있다면, 인근 진주시에서 운영하는 것처럼 유림회관의 운영비나 제반 강사수당을 군청에서 지원하여 활기차게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80이 넘은 나이에 한문 경전을 지도하는 김신수 원임 전교, 수강하는 학생들도 거의 80이 넘은 노인들이 명륜당 마루에 앉아 추위와 싸우며 경전을 읽고 있다.
이러한 저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것이 바로 선비정신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의 잿더미 위에서 민족중흥과 경제개발에 몸 바쳤던 이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있었기에 풍요로운 오늘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어른들이 건재하는 한 산청은, 산청향교는 날로 발전할 것이고 ‘선비의 고장 산청’의 영광스러운 명칭도 영원히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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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는 김신수 전교

대담/ 심동섭 편집위원(진주 노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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