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치암고택’(恥巖古宅)의 교훈

산청시대 2019-07-04 (목) 02:19 4년전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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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일 / 전 창원시 마산합포구청장

국가나 사회의 건강성을 담보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보장하는 것은 ‘물질’보다 ‘정신’이 우선이라는 말이 있다. 시민의식과 시대정신, 세계관이 어떤 특성을 갖느냐에 의해 흥하기도 하고 쇠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옛 선현들이 수신제가의 실천을 통해 지역과 사회발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끊임없는 자기성찰의 노력으로 삶의 지혜를 터득하도록 깨우쳐주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인가 싶다.

얼마 전 조선 고종 때 언양 현감과 홍문관 교리를 지낸 이만현(李晩鉉)(경북 안동시 안막동) 고택에서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다. 집 안팎은 온통 유가 경전으로 도배가 되어있다시피 해 솟을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묵향이 그윽하게 느껴졌다. 분노는 참아야 하고 욕심은 막아라(懲忿窒慾징분질욕), 정성을 다해 공경해라(誠敬성경), 혼자 있을 때 잘하라(愼獨신독)등의 벽서와 편액을 곳곳에 붙여놓은 것을 보아하니 집주인이 얼마나 심지가 곧고 깔밋한 성품을 지녔던 사람인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었다.

안채와 바깥채를 두루 돌아보며 빼곡히 붙어있는 경구를 하나하나 적바림 하다가 사랑채 기둥에 걸려있는 주련에 나의 눈길이 확 꽂혔다. ‘入朝當戒喜事’(입조당계희사), ‘持心貴在不欺’(지심귀재불기)라는 글귀였다. 벼슬자리에 올라서는 함부로 일을 벌이지 말고, 마음가짐에 있어서는 자신을 속이지 않음을 귀하게 여기라는 뜻으로, 약관의 율곡이 퇴계 선생을 방문했을 때 당부한 내용이라고 한다. 혹자가 의역한 바대로 나라님이 듣기 좋아하는 일보다는 백성이 기뻐하는 일을 위해 힘쓰라는 뜻으로 해석함이 마땅할진저, 위정자들에게 있어 이보다 더 큰 표징과 훈계는 없을 듯했다.

치암은 퇴계 선생의 11대손으로 문과로 벼슬길에 나아가 멸사봉공하였다는 평가를 받는 선비였다. 하지만, 만년에 경술국치를 당하자 ‘나라를 잃고도 살아있음이 내 집에 있는 바위 보기가 부끄럽다’ 하여 자신의 호를 ‘치암’(恥巖)이라 짓고는 비분강개하다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는 설명을 듣고 숙연해졌다. 이튿날, 선생의 고택을 나서려는데 문지기처럼 치암의 집 앞을 지키고 있는 바위가 묘한 자극을 준다. 염치없는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그로 인해 사람 사는 도리가 제대로 서지 않는 오늘날, 치암고택은 어떤 인생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시대에 부응하는 양식 있는 사람으로서의 소명은 무엇인지,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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