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반거충이 농사시보

산청시대 2020-07-01 (수) 22:57 3년전 1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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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로 풀들이 무성하다. 저 풀을 매야 나 다닐 길이라도 있겠다. 시원할 때 매자. 풀과 겨으른 농부의 한판승부로 해는 이미 중천에서 뜨끈뜨끈 달궈졌다. 두세 시간의 치열한 씨름으로 흙투성이와 허기진 몸짓은 누가봐도 불쌍스럽다.

“여기 좀 봐요” 오감마저 지친채 집으로 발길을 옮기는 내 등 뒤에서 무엇인가 기척한다. 두리번거려 꽃을 본다.
“오~ 너였구나!” 다소 곳이 이슬 머금은 이쁜 꽃잎들이 수줍게 얼굴을 내민다. 갓 세수하고 나온 소녀의 모습이다
“좀 천천히 보고가세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비스듬히 돌리기도 하고 당돌하게 눈깜짝 않고 마주 보기도 한다. 주인답게 아래 위를 훑어본다. 참 신기하기도 하다.
“내가 최고라고 해 주세요”
거 참, 고약하다. 너 뿐만이 아닌데, “그래. 그렇구나! 참 예쁘네!”

이러다 아침은 또 굶게 생겼다. 하긴, 아침이 대순가? 요즘 보니 노는 사람은 삼식이고, 일하는 절은이들은 두끼만 먹던데. 의사가 가끔은 한 끼씩 거르는 것도 좋다던데.
허들어진 봄꽃은 가고 초여름 꽃들이 여기저기 촘촘히 앉고서 서 집들어가는 주인을 붙들어 맞는다
“아~그래 예쁘네” 예쁜 모양이 다르고 예쁜 색깔이 다르고 예쁜 성질도 다르다. 고것들의 생김새만큼이나 향기도 다르다. 그윽하고  담백하고 풍성하다. 인증샷을 한다. 카메라도 새삼 신기롭게 느껴진다.
 
땀범벅을 더운물 찬물에 고문당하듯 내 맡긴다. “아~”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아우성과 함께 풀과 씨름했던 고통은 온데간데없고 순간 극한 행복감이 온 몸을 채운다.
‘자유!’ 비로소 나는 자유인이라는 자부심으로  내 삶을 충전한다. 해거름이 오면 아침의 치열했던 씨름판을 뒷짐 지고 돌아보는 것도 사람냄새 나는 사람과 이런저런 세상사를 잔으로 마주치는 것도 행복하다.
카톡을 눌러본다. 좋은 음악, 좋은 글, 유익한 것들이 허접했던 내 속살을 찌운다. 내 좋은 친구들은 모두 나의 보물이고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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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식 / 산청한방약초축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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