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소통의 길, 굴목재

산청시대 2020-09-04 (금) 13:42 21일전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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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일 / 전 창원시 마산합포구청장

자연경관이 수려해 예부터 소강남(小江南)이라 불렸던 전남 순천 조계산은 동·서 양쪽으로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송광사와 선암사를 품고 있다. 이 두 절을 잇는 길이 바로 ‘굴목재’다. 종단이 서로 다른 두 사찰 간 소통의 노력이 만들어 낸 20여 리의 이 길이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소망의 길이 되었다 해서 ‘소통의 길’이자 ‘위안과 치유의 길’이라 일컬어진다.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평화와 맑은 영성을 추구하는 순례의 길이 되고, 어떤 이에겐 성취와 즐거움을 만끽하는 이 산길. 오르고 또 내려서기를 수없이 거듭하면서 송광사 불일암에 당도하기까지 한나절쯤 발품을 팔았지 싶다. 고즈넉한 대나무 숲길을 따라 스님의 맑은 말씀을 음미하면서 한 걸음씩 다가가다 보니 어느덧 불일암에 도착해 있었다. 아담하고 소박한데다가 단출하기까지 한 산사(山寺)는 스님과 닮았구나, 싶었다. ‘조용히, 묵언 정진 중’이라고 쓴 팻말 아래 단정하게 놓인 흰 고무신 한 켤레가 수행자의 삶과 철학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스님은 간데없고 참나무 장작개비로 손수 만든 일명, ‘빠삐용 의자’만이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자니 법정스님에 대한 경건함으로 알 수 없는 감동이 온몸 가득히 차올랐다. 무언가로 가득 채우려고 안달하고, 좀 더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우리에게 단순·소박한 것들의 가치를 일깨워주고자 각자의 빠삐용 의자에 앉아보라는 듯했다.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그의 한 생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영혼을 깨우는 수많은 글로도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 엄혹한 유신시절에는 양심적인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인권유린에 항의했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수행을 통해 언행(言行)과 필행(筆行)이 일치한 삶을 사셨기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이리라.

굴목재 산행을 통해서 가장 크게 깨달은 건 ‘서로 함께한다는 것의 고마움’인 듯하다.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길을 만들어야 하고,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 상대방에게 먼저 다가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몸소 체험한 이번 트레킹은 정신적으로 나를 한층 성장시켜주었다.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말고 세상의 눈으로 자신을 비춰보라.”는 스님의 말씀 또한 내 가슴속 깊은 울림을 심어주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상대방과 나를 이어주는 ‘마음의 문’을 스스로 닫아버린 사람들. 허식과 가식의 가면을 쓰고 교만과 아집, 편견에 사로잡힌 위인들. 더 많은 걸 차지하려거나 더 깊은 발자국을 남기려 앙앙불락 묘수를 찾고 있는 야욕가가 있다면, 그분들에게 감히 고(告)하고 싶다. 굴목재, 그 소통의 길을 사부작사부작 걷다 보면 삶의 지혜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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