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쉽게 읽는 ‘남명 정신’
산청시대
2020-11-18 (수) 14:58
3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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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갑 / 한국선비문화연구원 사무처장 남명 사상이 현대에 꼭 필요한 정신으로 다시 세상을 깨우고 있다. 지난 40여 년 학계와 문중을 중심으로 맥을 이어 오던 남명 연구와 선양사업이 한국선비문화연구원 출범 이후 국도비 지원과 경남도의 기구설립 및 조례제정 등 체계가 갖춰지고 초중고교생은 물론 공무원과 교직원의 선비문화체험 연수가 줄을 잇고 있어 이제야 비로소 400여년 역사에 묻혀 있던 남명 사상의 발현에 서광이 비치는 듯하다.
‘위기지학’서 구현한 ‘경의 정신’ 큰 덕목 이제 남명을 전공하거나 연구하는 학자들은 사실과 고증을 통해 남명 사상에 그 깊이를 더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으나 그와 동시에 남명이 누구이며 왜 그동안 몰랐는지, 다른 선비와 비교해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과연 현대에 배우고 가르칠만한 가치가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 답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 공부 아닌 나라·백성 위한 학문 침잠 남명과 퇴계는 각자 1501년에 출생했으며, 퇴계는 1570년, 남명은 1572년에 돌아가셨다. 율곡은 1536년에 태어나 1584년에 돌아가셨으니 세 분 모두가 16세기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사림의 영수다. <을묘사직소>로 조정의 무능·부패를 일갈 명종재임 시 단성 현감의 벼슬을 제수받고 올린 <을묘사직소>(일명 단성소)에서는 왕을 고아로, 최고 실권자인 대비를 과부로 표현하며 조정의 무능과 부패를 극렬하게 일갈하였고, 선조임금 시 올린 <무진 봉사>는 재정을 출납하는 관리들의 폐단과 부패를 조목조목 밝히고 혁파를 주장한바, 이는 ‘서리 망국론’으로 불리며 이후 306년 동안 조정에서 부정부패를 경계하며 인용해 왔다. 선생 사후 20년 지나, 제자들 의병 거병 남명의 그러한 기개와 실천 사상은 제자들에게 그대로 이어져 임진왜란 발발 시 그의 제자 50여명이 글 읽는 선비의 몸으로 모두 의병장이 되어 수많은 전과를 세우고 국난을 극복하는 원천이 된바 이는 두 가지 면에서 세계사에서조차 그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특별하다. ‘백성이 곧 나라의 주인’ 혁신적 주장 펴 이는 조선 중기 주자학 위주의 주류학풍을 벗어났다는 오해와 이단 취급을 받으면서도 제자들에게 천문지리, 병법, 의서 등을 가르친 남명의 혜안과 함께 사후 20년이 지나도록 변함없이 제자들의 가슴에 실천정신에 대한 굳은 의지를 심어 준 선생의 가르침이 얼마나 위대했는가를 새삼 짐작게 한다. 인조반정으로 남명 제자 몰락의 길 걸어 이처럼 위대한 남명 정신이 왜 그토록 오래 묻혀 있었을까! 40여 년 전 김충렬 교수에 의해 세상으로 그러나 인고의 세월을 거쳐 마침내 40여 년 전 고려대 동양철학과 고 김충렬 교수의 <단성소> 발견을 계기로 남명이 다시 세상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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