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소처럼만 해도

산청시대 2021-01-13 (수) 23:02 3년전 1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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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주 / 법학박사, 전 진주경찰서장

소싸움, 개싸움, 닭싸움 등 사람들은 스스로 공격성을 다른 동물에게 투사시켜 즐기는 고약한 심리가 있다. 그런데 그러한 싸움 중에서도 좀 의젓하고 늠름하며 보다 신사적인 것이 소싸움이 아닐까 싶다. 소싸움이 있는 모래사장에는 야성과 함성, 긴장과 환호가 뒤엉켜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다. 큰 눈을 부릅뜨고 머리를 맞댄 채 뿔을 번득이고 목의 힘줄을 세우며 뒷다리를 팽팽하게 버틴 거구의 황소는 힘과 야성의 상징이다. 힘과 힘, 뿔과 뿔의 정면 대결이 보는 이들을 긴장시킨다. 관중은 자신도 모르게 소싸움의 팽팽한 긴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 전율하며 흥분하고 환호한다. 닭과 개의 싸움인 투계나 투견처럼 처절하게 뒤엉키는 것도 아니고, 로마 콜로세움에서 죄수와 맹수가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투수처럼 잔인하지도 않다.

우리 소싸움은 원래 목동들이 심심풀이로 했다든가, 신라가 백제에 이긴 뒤 전승 기념으로 시작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전통 민속 특유의 정겨운 흙냄새며 풀냄새가 배어 있기도 하다. 소싸움의 최대 특징은 저 싱싱한 초원처럼 태고의 야성이 넘치는 데 있다. 소가 싸우는 것은 상대를 증오하거나 적의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에 길들여지기 전부터 핏속에 흐르고 있는 야성을 지켜내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야성은 때로 거칠기도 하지만 순수하고 정직하다. 그래서 싸움에 패한 소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한다. 어떤 핑계나 변명도 없고, 비열한 뒤집기 계책이란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다.

소만큼 우직한 동물이 없다. 하지만 이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 규칙과 원칙을 따르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충만한 것에 감탄하게 된다. 소싸움을 지켜보는 진정한 매력도 이긴 쪽의 의젓한 모습보다 진 쪽의 깨끗한 결과 승복에 있다고 할 것이다. 돌아서서 딴짓하거나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는 법이 결코 없다. 머리를 숙이고 물러서는 패자의 모습이 차라리 아름답기까지 하다.

우리 민족이 소싸움을 좋아하는 진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답답한 현실의 불만이나 아픔을 소싸움을 지켜보며 잠시라도 씻거나 날려 보낼 수 있다. 언제나 절대 권력에 눌리고 핍박받아온 민중들이 800여 년의 소싸움 역사를 지켜온 까닭도 같은 맥락이다. 한때는 마을마다 주민들이 소싸움에 명예를 걸었다. 소싸움이 주민 단합의 상징이 됐으므로 영악한 일제는 소싸움대회를 아예 금지하기까지 했다.

소싸움대회를 민중의 축제로 승화시키는 것도 좋고, 국제적인 문화관광 행사로 격상시키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소싸움대회를 눈여겨보아야 할 대상은 이 나라 정치권의 ‘싸움닭’들이 아닌가 한다. 정녕 이들이 소싸움의 순수하고 정직한 야성을 먼저 배워야 할 것이다. 우리는 소싸움이라도 지켜보며 저 힘차고 정직한 야성을 만나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올해는 신축년 소띠 해다. 소처럼 순수하고 우직하게만 살아도 좋은 세상이 될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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