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봄날의 애상

산청시대 2021-06-28 (월) 21:36 1개월전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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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일 / 전 창원시 마산합포구청장

 

어떻게 살고 싶은가. 잘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 대부분 사람이 답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을 손꼽을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 신문을 펼쳐보면 곳곳에서 목이 멘다. 사회와 가족이 지웠던 짐을 벗고 그저 평안하게 여생을 보내도 모자랄 노인들의 서글픈 삶을 보노라니 슬픔과 동정, 우울과 같은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는 것이다.

장다리꽃이 만발한 어느 봄날이었다.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셋방에서 말기 대장암 진단을 받은 남편이 5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아내를 극진히 보살피다가 “아내보다 내가 먼저 갈 순 없다”며 동반 자살한 데 이어, 군산에선 80대 노인이 치매를 앓던 아내를 10년 동안 병구완하다가 자기마저 감당하기 힘든 병에 걸리자 극단적 선택을 했다. 고령화 사회에서 점차 보편화되고 있는 ‘노노(老老) 돌봄’이 살인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충남 예산에서는 치매에 걸린 아내를 헌신적으로 간병하는 한 노인의 순애보가 감동을 자아냈다. 아내의 치매를 직접 돌보기 위해 아흔한 살의 노인이 요양보호사 국가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는 영화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아내를 조금 더 전문적으로 돌보는 게 어떻겠냐는 보건소 직원의 제안을 받고는 요양보호사 시험에 응시해 단번에 합격증을 거머쥐었다는 것이다.

3, 40대 젊은 사람들에게도 힘겨운 시험에 구순의 노인이 당당히 합격할 수 있었던 힘은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아내와 함께하고 싶은 애절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합격의 소감을 묻는 질문에 “우리 두 사람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죽는 날까지 내가 보호해야겠다.”고 했다. 그의 지순한 사랑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동안 마음 놓고 아플 수조차 없었을 어르신들이 맞서 싸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빈곤, 질병, 고독을 다 물리친다 해도 마지막 강적이 기다리고 있다. 세상과 아름다운 작별을 위한 눈물겨운 자기와의 싸움이다. 꽃 한 포기 없는 민숭한 집, 사람의 훈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셋방에서 아내와 함께 마지막 결심을 했을 남편을 생각하니 갑자기 울컥, 목울대가 치솟는다.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치매 환자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최근 5년간 치매 환자 학대 사건도 5천여 건에 달한다고 한다. 한숨과 회한, 고독과 우울함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노년의 낙백한 삶마저 그들 개인이 알아서 감당하라는 건 가혹하다. 이런저런 상념에 잠기자 밑도 끝도 없이 백설희가 가슴 저미도록 불렀던 ‘봄날은 간다’가 오늘따라 상실과 이별의 아픔에 서글픔을 더한다. 그 깊고 깊은 부부의 선연조차 감당할 수 없게 만드는 노년의 삶이 점점 위태롭게 다가오는데, 어쩌면 좋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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