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흙이 살아있어야 한다

산청시대 2021-09-05 (일) 23:24 2년전 1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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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개동 / 박씨 산청군종친회장, <수필문학>작가회 이사

 

올해부터 내 농장 이웃에 부산에서 개인택시를 하시는 분이 처음으로 밭농사를 지으신다. 지난해 혼자되신 처형이 밭농사를 포기하겠다고 해서 자기들이 농사를 지어 보기로 했다며 주말이면 내외분이 와서 땀을 뻘뻘 흘리며 풀을 파내고 삽으로 흙을 뒤집어 밭을 일구고 나일론 그물을 사다가 울타리를 치고 옥수 콩 가지 고구마 고추 참외 수박 등을 올망졸망 골고루 심어 놓고 싹이 트고 자라는 걸 보며 아주 재미있다고 하며 좋아한다. 

 

그런데 풀을 매어서는 모두 밖으로 내다 버리고 바닥이 말끔하게 한다. 농사를 짓는 건 집 안 청소를 하듯이 밭을 깨끗이 한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흙은 유기질이 많아야 곡식이 잘 자라는 옥토가 되는 것이다. 풀을 토양에 되돌려 주어야 한다. 농사는 풀과의 전쟁이라 풀을 매고 돌아서면 또 수북이 자란다. 장마철이 되어 비라도 자주 내리면 감당하기 힘이 든다. 그래서 노약자들이 농사를 짓는 집에서는 제초제를 사용하는 데 편하긴 하지만 토양이 척박해가고 수질오염을 불러오게 된다. 제초제를 사용한 논밭에는 토양의 통기성을 좋게 하고 기름지게 만드는 지렁이와 유용한 토양미생물을 살 수 없게 만든다. 제초제는 잔류 독성이 오래가기 때문에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다. 농약잔류 독성이 남아있는 척박한 토양에서 자란 먹거리가 우리 몸에 좋을 리가 없다.

 

나는 감나무밭에 풀을 서너 차례 베어 주고, 볏논에는 식용 우렁이를 사다 넣어서 벼농사를 짓는다. 농사를 지으면서 또 한 가지 골칫거리는 산짐승의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산토끼와 고라니는 콩잎을 다 잘라 먹고 옥수수가 익어가고 고구마 알이 들기 시작하면 멧돼지들이 난장판을 만들어 허탈하게 만든다. 그런데 콩 한 알 심으면 4~5개의 콩이든 꼬투리 10여 개를 만드니 40~50개의 콩을 수확할 수 있고, 볍씨 한 포대 못자리에 파종해서 모내기 농사 잘 지으면 40~50포대를 수확할 수 있으니, 분명히 농사는 산술적으로는 수지맞는 것 같은데 인건비를 포함한 농비를 계산하면 경제 타산은 영 아니다. 그래서 농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농촌 총각들이 신붓감을 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토양은 수십 년 수백 년을 목초가 자라고 썩고 풍화작용을 해서 유기질이 많은 흙이 되는 것이다. 깊은 산중의 수목은 거름을 따로 주지 않아도 잘 자란다. 나뭇잎이 쌓여 가며 썩어서 된 흙을 부엽토라고 하는데 수많은 토양미생물이 서식해서 식물이 잘 자라는 참흙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기농 재배를 하는 농가에서는 부엽토를 채취해와서 유용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유기질은 땅의 보약이다.

토양에 되돌려 주어야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다. 


각종 미생물이 살아가는 

기름진 참흙이어야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 

 

1970년대 중반에 우리 고장에도 경지정리를 해서 논밭을 반듯하게 만들어 농사짓기에 편하게 만들긴 했는데 토양에 대한 지식이 없는 토목기사들이 높은 데를 깎아서 낮은 곳에 메워 반반하게만 하면 되는 거로 알고 겉흙을 파다가 낮은 데다 메워버리고 나니 생땅(속흙)만 남은 곳에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곡식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옳게 경지 정리한 곳은 겉흙(작토)을 따로 모아두었다가 평탄하게 만든 후에 모아둔 흙을 골고루 펴서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했다. 

 

유기질은 땅의 보약이다. 내가 어릴 적엔 마을마다 동네 장정들이 돌림 풀베기를 해서 집마다 돌아가며 산에 가서 풀을 베어다가 퇴비를 만들어 논밭에 넣어가며 농사를 지었는데 행정에서는 마을 대항 풀베기 경쟁을 시켜서 시상하면서 권장을 하기도 하였었다. 요즈음 들어서는 보릿대나 밀짚도 모두 태워버리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인력이 부족하고 힘이 드니 쉽게 하려고 태워버리지만, 유기질은 토양에 되돌려 주어야 한다. 허약한 사람은 잔병치레를 많이 하고 감기도 잘 걸리듯이 유기질이 많은 토양에서 곡식이 튼튼하게 자라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다. 토양 속에 지렁이가 살아가고 유용한 각종 미생물이 살아가는 통기성이 좋고 기름진 참흙으로 만들어야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

 

우리 고장에는 비닐하우스 시설을 해서 겨울철에 딸기재배를 하여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쌀농사를 주로 하던 농촌이 시설재배로 수익을 많이 올리고 있으니 젊은 사람들도 귀농을 많이 하게 되고 농촌이 활기를 띠게 된다. 웬만하면 한가정에 차가 두 대씩(승용차, 트럭) 되고, 연간 소득이 억대를 넘는 집들도 있다고 한다. 비닐하우스 옆에는 컨테이너로 집을 지어 외국 노동자들이 기거하며 일을 하는 등 새로운 풍속도가 생겼다. 요즈음은 하이베드식이라고 허리 높이 정도로 시렁처럼 만들어 외국에서 수입해온 배지를 깔고 딸기를 심어서 양액으로 재배하는 농가가 대부분인데 일손은 덜고 편리하기는 한데 난방비와 재료비 등 농사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게 결점이기도 하다.

 

딸기재배를 하면서 나오는 딸기 순 깔린 것을 냇가에 버려서 강물을 오염시키거나, 말려서 태워버리는 걸 보면 예전에 풀베기 시합을 하던 때를 생각하면 아깝기 짝이 없다. 특히 경남의 젖줄인 남강 댐의 상수원 보호구역인 우리 고장에는 퇴비장을 만들어 모아두면 필요한 농가에서 가져다 쓸 수 있게 수질 개선과 토양보존 차원에서 행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겠다는 제언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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