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영남탕 43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산청시대 2023-03-16 (목) 06:33 1년전 648
이문영 / 대한간호협회 대외협력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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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일 산청 영남탕이 문을 닫았다. 1980년에 영업을 시작해 43년을 이어온 영남탕. 산청읍 초입에 우뚝 솟은 굴뚝 때문에 산청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던 영남탕이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서른 일곱에 목욕탕을 직접 짓고 영업을 시작한 부모님은 이제 팔십대 노인이 되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목욕탕 운영은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매일매일 일정 수의 손님이 오는 평범한 일상이 이어졌다. 하지만 전대미문의 감염병인 코로나19는 목욕탕 운영에 핵폭탄과 같은 충격을 주었다. 손님이 단 한 명도 오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기도 했다. 목욕탕을 시작하고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는 하소연을 듣게 되는 날들도 늘어갔다. 급격히 늘어난 전기요금, 인건비 부담 등 일상적인 지출은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재정 압박은 가속화 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목욕탕 운영을 계속한 것은 영남탕 앞에 건립 예정이었던 회전 교차로 때문이었다. 말만 무성하던 교차로 건립 계획은 2020년부터 본격화되었고 군청에서 세워진 계획이 군의회에 상정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일부 보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보류가 결정되었고 이때부터 회전교차로 건립에 영남탕이 수용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영남탕 수용 여부는 군민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갔다.   

영남탕 앞 회전 교차로는 수 년 전부터 세워진 계획이었다. 산청읍 초입에 번듯한 교차로를 만들어 교통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주민 편의를 도모하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계획이 보류된 이후 추가 논의가 없자 부모님은 애를 태웠다. 하지만 최근 2월에 초기 계획과 달리 대폭 축소된 교차로 건설 계획이 언론을 통해 발표되었다. 산청군의 계획을 믿고 기다리던 부모님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으나 산청군은 계획 축소에 대해 어떤 해명도 하지 않았다. 계획 무산으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두 분의 몫이 되었다.  

영남탕과 영남장은 부모님의 분신과도 같은 건물이다. 한 장, 한 장 벽돌을 쌓고, 욕조의 타일을 고르고, 탕의 위치를 직접 정하면서 지어졌다. 샤워기가 고장나고, 타일이 떨어지면 손님들이 다 가고 없는 야밤에 직접 수리를 했다. 목욕탕 구석구석 어느 한 곳도 두 분의 땀과 눈물이 배지 않은 곳이 없다. 처음 목욕탕이 만들어졌던 80년대에는 나무로 물을 데웠다. 그러다 보니 토막토막 잘라놓은 나무를 지하 보일러실로 옮기는 일에는 온가족이 동원되기도 했다. 나무를 베고, 자르고, 쌓고, 불을 피우는 일은 기름 보일러가 공급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부모님의 지독한 근면 성실함은 자식들에게도 산교육이 되었다. 두 분은 이런 고단한 노동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으로 매입한 부지를 마을회관 건립 용도로 쾌척하는 통 큰 기부를 하기도 했다. 당시 도의원이었던 현 군수는 마을회관 건립 예산을 확보해 회관 건립에 기여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렇게 건립된 청호마을 회관은 지금 청호마을 주민들의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 있다.  

영남장 역시 산청의 역사와 함께했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놓여질 때는 공사를 담당한 분들의 숙소이자 주요 결정을 하는 사무공간이 영남장에 차려졌다. 밤나무 방제작업을 하는 기간에는 헬기 조종사들의 쉼터가 되기도 했다. 전국 노래자랑 진행자인 송해 선생님이 묵어가신 일도 있다. 한방약초축제, 산청엑스포 기간에는 방이 열 개만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손님이 만원이었다. 부모님은 묵어가는 손님들이 고마워 매실주스를 만들어 나르고, 토마토를 정성껏 갈아 대접하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젊은 날 노동의 고단함으로 인해 지금은 허리가 많이 굽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어머니는 매일 이른 시간에 계원들과 함께 목욕탕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이것이 건강의 비결 중 하나였다. 매일 함께 목욕을 하는 분들은 “홀딱계”라는 계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목욕탕에서 만났다고 해서 이렇게 절로 웃음이 나오는 센스있는 이름이 지어졌다. 이분들은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 시간에 목욕탕에 모여 정담도 나누고 건강도 챙기셨는데 마지막 목욕을 하던 3월 2일은 모두가 눈물바다였다고 한다. 

영남탕은 고된 농사일의 피로를 풀기 위해, 명절을 앞두고 정갈한 몸가짐을 위해 다녀가기도 했지만 매일 또는 매주 오시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영남탕은 산청 군민들과 매일의 일상을  함께 해 왔다. 영남탕이 없어지는 아쉬움, 섭섭함은 영남탕을 찾았던 모든 산청 군민들의 마음일 것이다. 영남탕 둘째 딸로서 그동안 영남탕을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부모님을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라는 인사말을 전하고 싶다.

​※이문영 전문위원은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나왔으며, 17대 국회 박계동 의원실 비서관과 19ㆍ20대 신성범 의원실 보좌관을 지냈습니다.

 

 

기고 내용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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