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가는 길

산청시대 2017-02-22 (수) 13:49 7년전 1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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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현 / 경호문학회 회장

 

올 설에도 어김없이 귀성객으로 발 들여놓을 틈도 없이 긴 줄을 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래간만에 고향을 찾는 설레는 마음 때문에 모든 고통을 이겨내고 부모형제를 만나 즐거운 명절을 맞았을 것이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들은 오랫동안 그리던 회포를 푸느라 명절을 준비하는 수고와 고통도 말끔히 씻었으리라. 머리가 하얗게 센 꼬부랑 할머니와 꼬부랑 할아버지를 남겨두고 발길을 돌리는 발걸음도 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무거웠을 것임에 틀림없겠지만.

나도 이제 ‘옛날 옛적에 꼬부랑 할머니가 살았대요’로 시작되는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꼬부랑 할머니의 나이를 먹었다. 공자와 같은 예순에도 귀가 순해진 이순이 되지 못하고 세월을 흘려보내다 칠순에 이른 이제야 오던 길 돌아보며 어린 시절에 할머니에게 듣던 꼬부랑 할머니 이야기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의 이야기이며, 나와 너의 이야기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다.

평생 살아오던 길 돌아보면 피와 살을 물려준 고향에서 인생길을 출발해 공부한답시고 학교 따라 이곳저곳 옮겨 다니던 소년시절, 그리고 소년 시절에 아가씨를 만나 처가가 된 처가의 고향은 제2의 고향이 되고, 직장을 갖게 되면서부터 직장 따라 이삿짐 위에 몸을 맡기고 이곳저곳 옮겨 다니던 청장년 시절, 그리고 자식들 공부시키겠다며 직장 집어던지고 혈혈단신 달려온 부산은 제3의 고향이 되었다. 예까지 흘러온 길 돌아보면 꼬불꼬불 수만리를 돌고 돌다 돌아온 가시밭길이었다,

소년시절에 살던 내 고향 지리 산골도 많이 변했다. 이제는 누추해서 창피하던 쓰러져가는 초가집도 모두 기와집 양옥으로 승격하고, 꼬불꼬불 뱀처럼 돌고 돌아가던 길도 반듯하게 곧게 펴졌다. 나는 뒤틀린 고향이 남 보기 창피하고, 밥 먹고 살기도 힘들고, 자식들 기르기에도 못마땅해, 다니던 직장 팽개치고 불현 듯 단봇짐을 쌌지만, 개도 주인이 사랑해야 남도 사랑하듯 내가 자란 내 고향도 내가 사랑하고 아껴야 남도 사랑한다는 재천명의 나이에 겨우 깨달았다.

텅 빈 고향 어린이도 없고 청년도 없는 내 고향을 어떻게 해야 사람이 끓는 고장으로 만들 수 있을까 걱정 한 짐 짊어지고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 꼬부랑 지팡이를 짚고 꼬부랑 내를 건너 꼬불꼬불 꼬부랑길 고향 길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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