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인의 역사기행] 신등면 상산 김씨 김후 묘(경상남도기념물 제251호)

산청시대 2018-03-14 (수) 12:25 3년전 1686  

산청군 문화관광해설사회(회장 성순용)는 매월 말 산청관내 문화유적지에서 학습과 토론을 하며 그 답사자료를 바탕으로 관내 외에 홍보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산청시대>는 ‘우리지역 문화유적 시리즈’를 연재하며 우리 주변에 산재해 있는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고취시키고자 한다.

글·사진 / 민영인 문화팀장(산청군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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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후 묘지

2월 답사지는 산청군 신등면 평지리 산33번지 상산 김씨(商山金氏) 13세손 김후(金後)의 묘지로, 본관은 경북 상주이다.
피장자 김후는 고려 말 사람으로 포은 정몽주에게서 사사하였고, 정4품 직제학(直提學)의 벼슬에 올랐으나, 1392년 4월 4일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한 72현(賢)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 후 두문동에서 나와 처가인 이곳으로 낙향했다.

김후는 동지들과 이별하고 두문동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은 안타까운 마음을 남는데, 
同被白雲像(동피백운상) 동지들과 높고 깨끗한 기상을 가지고
遊於北岳中(유어북악중) 한때는 북악산 속에서 놀았는데
今我沒塵土(금아몰진토) 이제 속세에 묻혀 작은 티끌이 되어서
奇身莽蒼空(기신망창공) 이름은 저 하늘에다 맡기고 가네.

이곳에 내려와 은락재를 지은 후 남긴 시에서 평온해진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空荒園裏數株花(공황원리수주화) 황량한 정원에 몇 그루 꽃송이는
潤色山村寂寞家(윤색산촌적막가) 산촌에 적막한 집을 화사하게 빛내주네
入室更看樽有酒(입실경간준유주) 방에 들어와 술항아리 다시 보니
宦情從此薄於紗(환정종차박어사) 이제 벼슬길 나갈 생각 거의 없구나.
이 시는 현재 은락재 주련으로 걸려있다.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忠)을 붉은 ‘단’(丹)자로, 무너지지 않는 큰 언덕을 비유하여 언덕 ‘구’(邱)자를 붙여 호(號)를 ‘단구’(丹邱)라 지었다. 또한 중용12장 구절의 ‘군자의 도(道)는 무변광대 하지만 본체는 은미하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와 <논어> 학이편 ‘벗이 나를 알고 멀리서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에서 ‘은락’(隱樂)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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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후 명문

고려 16공신의 한 분인 고려 정당문학 문충공 난계 김득배 선생 또한 상산인으로 포은 정몽주의 스승이었다. 난계 선생이 모함을 받아 참수되었을 때 목숨을 걸고 스승의 시신을 거둔 것은 포은 선생이다. 그 후 포은선생이 선죽교에서 피살되자 아무도 돌보지 않는 시신을 김후가 거두어 장례를 치렀다. 난계가 포은 정몽주에게 진 빚을 김후가 갚은 격이다. 

상산 김씨 문중의 어르신 두 분이 나와 은락재와 김후 선생에 대한 소개를 마친 후 은락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언덕의 묘소로 향했다.
모두 4단으로 이루어진 이 묘역에는 15∼18세기에 걸쳐 상산 김씨(商山金氏) 13대 후(後)를 비롯한 모두 6기의 묘가 조성되어 있다. 이중 13대 후와 14대 장(張)의 묘는 방형분이고, 19대 경근(敬謹)과 25대 규한(奎漢)의 부인 평산 신씨(平山申氏)의 묘는 원분(圓墳)이다.
방형분은 15세기 형식이고, 원분은 16세기 말 이후로, 이것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유행하던 방형분의 종말과, 원분이 조성되기 시작하는 시점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가장 상단에 위치한 김후의 묘는 부인 장씨(長氏)와 합장되어 하나의 봉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갑석의 각 모서리는 끝이 가볍게 들어 올려져있어 탑의 옥개석이나 한옥 처마의 부드러운 곡선미를 연상케 한다.

또한 김후의 묘 면석에 새겨진 명문(銘文)은 묘지(墓誌)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 고인(故人)의 생전 행적과 이름, 본관(本貫), 자손관계, 묘의 조성연대와 위치 등이 기록되어 있다. 방형분의 면석에 연대나 이름이 새겨진 예가 있지만 대부분 후대에 가필한 것들임에 반해, 이 면석은 묘를 조성할 당시 새긴 점과 묘지의 구성내용을 모두 갖추고 있어 당대의 사료적, 학술적 연구가치가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산청군 신등면 평지리, 일반적으로 ‘법물’(法勿)이라고 부르는 이 고을은 ‘법이 없어도 된다’는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상산(商山)김씨들이 600년 이상 대대로 살아오며 김후의 충의 정신을 그대로 후손들이 이어오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임진왜란 시기에는 13명의 상산인이 의병장이 되어 순절하셨고, 김성일과 함께 일본 사신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직접 대면한 김명윤을 비롯하여 남명기념관내 작전도에 나오는 진주단성 의병장 김경근, 촉석루 대첩에서 순절한 김준민, 김씨 팔군자, 소산 김석, 묵재 김돈, 해기 김령, 단계 김인섭, 물천 김진호 등 조선 초부터 말기까지 꾸준한 학맥이 이어진다.
특히 김행은 당대 석학이신 남명조식의 사위이고 홍의장군 망우당 곽재우의 장인이기도하다. 이러한 학풍은 근대까지 이어져 김영숙은 1919년 3월 20일 오후 2시 단계장터에서 500~600명의 군중을 모아 산청최초의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고려 말 충신 김후의 묘에서 시작한 답사는 근대 김영숙까지 내려오며 상산김씨 뿐만 아니라 배운 것을 실천하는 산청의 선비정신을 일깨우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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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를 찾은 해설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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