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인의 역사기행] 산청 지명의 원류를 찾아 떠난 사오싱(소흥)(5)

산청시대 2018-07-30 (월) 17:14 5년전 2091  
루쉰의 어린 시절 흔적이 남은 루쉰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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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신 거리

루쉰 생가와 백초원, 공부방 ‘삼미서옥’ 
소설 속 ‘공을기’가 찾던 함형주점 남아

높다랗고 흰 벽의 건물이 있어 입구에 있는 간판을 보니 ‘상덕당포’(尙德當鋪), 전당포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루쉰이 살았던 곳이 있다. 뤼신은 아주 어렸을 때는 집안이 풍족했지만, 13살 때 조부가 과거시험 부정에 연루되어 투옥되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고, 부친마저 위중한 병에 걸리자 그는 수시로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들고 전당포를 찾았다.
시내에는 또 하나의 옛 촌이 있다. ‘노신고리’(?迅故里)로 루쉰의 정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루쉰꾸리 큰길에서 바로 보이는 벽에는 흑백으로 ‘?迅故里’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고, 왼손에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담배를 든 루쉰의 그림이 있어 아! 바로 여기구나 할 수 있다.

루쉰(?迅, 1881~1936)의 본명은 주장수(周樟?)이며 후에 주수인(周?人)으로 개명하였다. 자(字)는 예산(豫山)이나 이 또한 후에 예재(豫才)로 개명했다. ‘루쉰’(?迅)은 1918년 <광인일기>를 발표할 때 처음 사용한 필명이다. 이곳 소흥 사람으로 중국의 저명한 문학가이자 사상가이다. 5.4신문화운동의 핵심 참가자로 중국 현대문학의 창시자로 추앙된다. 마오쩌둥도 일찍이 “루쉰의 방향이 바로 중화민족의 새로운 문화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루쉰은 일생 동안 문학창작과 비평, 사상연구, 문학사연구, 번역, 미술이론 도입, 기초과학 소개, 학술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의 이러한 업적은 중국을 넘어 한국, 일본 등 20세기 동아시아의 문학계를 선도한 인물로 칭송된다.
그의 대표작품으로는 중국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구어문으로 쓰는 문학인 백화(白話) 소설의 시초라 평가받는 <광인일기>, 몰락한 지식인을 그린 두 번째 소설 <공을기>, 1921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아Q정전> 등을 꼽을 수 있다.

루쉰 기념관에는 육필원고와 편지 등 600여 점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서 둘러볼 곳은 주씨(周家)들의 대가족이 대대로 살았던 루쉰 본가, 생가, 백초원(百草?), 풍정원, 맞은편에는 루쉰이 공부한 ‘싼웨이수우’가 붙어있고, 조금 떨어져 루쉰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함형주점(咸亨酒店)이 있다. 
중국의 중학교 교과서에는 ‘백초원에서 삼미서옥까지’라는 산문이 실려 있다. 글을 시작하며 그는 “우리 집 뒤쪽에는 아주 큰 정원이 있는데, 백초원이라고 했다. 그 집을 주문공의 후손들에게 팔았는데, 마지막으로 본 것이 7,8년은 되었다. 거기에는 마치 들풀만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당시에 내 낙원이었다.”로 시작하며 어린 시절 백초원에서의 추억을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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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서옥  
“집을 나서 동쪽으로 채 반 리(里)도 못가 돌다리를 건너면 바로 우리 선생님 댁이다. 대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 3번째가 공부방이다. 가운데 위에는 ‘삼미서옥’ 편액이 걸려 있고 그 아래에 한 폭의 그림이 있다. 그림 속의 고목나무 아래에는 살찐 꽃사슴 한 마리가 누워있다. 비록 공자의 위패는 없어도 우리는 그 그림을 보면서 인사를 하는데, 첫 번째는 공자에게, 두 번째는 선생님에게 했다”고 이 글에서 묘사하는 ‘삼미서옥’이다.
삼미서옥(三味?屋)은 청말 소흥성내에서는 유명한 사숙(私塾)이었다. 자가 경오(鏡吾)인 서당선생 수회감(壽懷鑒, 1849~1930)은 매우 박식하며 검소하고 단정한 사람이었다. 노신은 12세부터 17세까지 5년간 이 사숙에서 공부하며 문학의 기초지식을 다졌다. 

골목을 따라 안으로 계속 들어가면 우측에 ‘함형주점’이 나온다. 
외부에 소설속의 주인공 ‘공을기’(孔乙己) 청동상이 서있고 그것을 모델로 항상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어 묻지 않아도 바로 여기구나 할 수 있다.
이 집은 루쉰의 당숙이 1894년 개업한 주점으로 소설 속의 공을기가 늘 찾아오던 곳이며 안으로 들어가 왼편으로 보면 ‘孔乙己欠十九?’(공을기 외상 19전)이란 액자가 걸려있다. 함형은 주점이 번창하여 만사형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음식을 먹을 경우에는 최소 100원 카드를 사고 그 다음에 주문을 할 수 있다. 
  
19세기 말엽 청나라 정부는 부패하여 백성들의 생활은 도탄에 빠졌지만, 수당 이래로 과거제도는 여전히 성행했다. 과거에 급제한 소수의 지식인들은 지배 계급으로 신분상승 하지만, 과거에 낙방한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하층민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소설 속의 주인공  ‘공을기’ 또한 대다수 몰락한 지식인의 전형으로 착하고 소박한 성격이지만 진부하고 고집스런 이중성을 가진 인물이다.
1934년에 발표된 우리나라 채만식의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의 주인공 ‘P’와 같이, 많이 배웠음에도 그 지식을 쓸데가 없고, 생산 의욕조차도 없는 슬픈 지식인인 룸펜과 같은 부류이다. 공을기는 황주 한 사발에 단지 회향두(茴香豆)만 안주로 먹고 가지만 결국 외상값 19전은 갚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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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을기 청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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