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역 문화유적 시리즈(6) 단성면 소남리 조씨 고가(경남 문화재 자료 제165호)

산청시대 2018-10-12 (금) 12:42 5년전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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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 고가 입구

대소헌 조종도와 조부 하구정 조응경이 세거
경호강가에 ‘송객정’ 지어놓고 ‘탁영’과 ‘소요’
‘口’자형 건물 배치‥사대부 주택 공간적 구조

대소헌 조종도 선생과 함안 조씨에 관한 유적은 단성면 소재지에서 소남리로 들어서면 ‘충의공 조종도 세장지 입구’(忠毅公 趙宗道 世庄地 入口)라고 쓰진 입석(入石)이 있고 경호강가에 송객정(送客停)터와 송객비. 대소헌 신도비와 비각이 있다.
또 조씨 고가에서 1km정도 북쪽으로 들어가면 세장지(世葬地, 13개의 묘소)와 재실인 오산재(梧山齋)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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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고가 본채

단성면 소남리 532-2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조씨 고가는 사랑채 종도리 장여의 상량문에 의하면 1890년(고종 27년)에 세워진 고옥이다.
형태는 ‘口’자형으로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는 사대부 주택의 공간적 구조로 이루어진 모습이다. 사랑채는 ‘ㄱ’자형 평면으로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로 동쪽의 2칸짜리 대청은 분합문을 설치하여 개폐를 자유롭게 한 누각의 격식을 하고 있다.(하부는 팔각 초석)  
안채는 팔작지붕의 일자형으로 6칸과 2칸짜리 규모에 들보가 3량(樑)이나 되는 일자형 평면 건물로는 규모가 큰 편이다. 사당은 익공계 맞배지붕을 한 건물로 단청이 되어 있다. 현재 곳간채는 해체하여 개축공사를 하고 있다.

대소헌 조부 조응경 단성현감 지내

이곳 조씨 고가는 대소헌(大笑軒) 조종도(趙宗道 1537~1597)선생의 조부이신 조응경(趙應卿)이 세거를 한 곳으로 단성현감을 지낸 하구정 조응경 공은 경호강가에 송객정을 지어놓고 탁영과 소요를 하였다고 한다.

대소헌 선생의 자는 백유(伯由)며 호는 대소헌(大笑軒)이고 시호는 충의(忠毅)로 명종13년(1558)에 생원시에 합격한 뒤 1573년(선조6) 안기도(安奇道) 찰방(察訪)을 제수 받았다.
재직 중 서애(西崖) 유성룡(柳成龍),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등 여러 현사들과 교의가 두터웠었다. 그 후 장예원 사평(掌禮院 司評)을 지내고 양지(陽智) 현감을 배명 받았으며 1587년에 금구(金溝)현령으로 전임되어 선정을 베풀어 송덕비가 그곳에 현존해 있다.

서애·학봉 등과 교의 두터운 대소헌

1592년(선조25년)에 장악원(掌樂院) 첨정(僉正)을 제수 받고 이어 단성현감으로 전임했으며, 1596년(선조29년)에는 함양군수를 배영 받았다. 이어 용인, 단성현감과 금구현령 등을 역임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초유사 김성일, 이로와 함께 창의에 앞장섰으며, 정유재란 때는 함양군수직에서 물러났음에도 처자와 고을백성들과 함께 황석산성에 들어가 안음현감 곽준과 함께 가토오(加?淸正)의 왜군과 싸우다가 성이 함락되자 순절하였다. 이때 판서 이준민의 여식인 부인도 따라서 자결했다.)

정유재란 때 함양 황석산성에서 순절

‘일련 전정 가지론’(一?全鼎可知論 한 점의 고기 맛을 보아도 전체 솥 안의 맛을 알 수 있다)이듯이, 해학적이고 호방한 대장부의 기질을 가진 선생의 학문과 삶의 태도는 남명을 비롯한 스승들과 학자들과의 교유 그리고 문헌인 <대소헌 일고>(大笑軒逸稿)를 통해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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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군 문화관광해설사

민영인 / 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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