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역 문화유적 시리즈(7) 여유가 넘치는 단계 한옥마을 ‘권씨 고가’(경남문화재자료 제120호)

산청시대 2018-10-29 (월) 13:38 5년전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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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강공 ‘국불천위’ 인정되자 과객접대 위해 건립
종도리와 상량문에 1919년 무렵 처음 발견 추정
안채 정면 5칸, 측면 2칸 팔작지붕, 골기와 구조

산청의 고택이나 한옥마을하면 대부분 남사예담촌을 떠올린다. 물론 남사마을이 2011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로 선정되면서 자연스럽게 산청의 핫플레이스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호젓하면서 여유롭게 담장을 따라 걸으면서 한옥의 아름다움을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단계(丹溪)한옥마을을 추천한다.
2.2km에 이르는 토석담(등록문화재 제260호)이 골목을 따라 이어지며 권씨 고가(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0호), 박씨 고가(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4호) 등과 어우러지며 예스러움을 한껏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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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석담’과 ‘권씨고가’, ‘박씨고가’ 어우러져

신등면은 57.73㎢ 면적에 30여개 자연부락으로 2,7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지만, 산청군 전체 110여개의 문화유산 중 30여개가 있을 정도로 유서 깊은 고을이다.
단계는 황매산(해발 1,108m) 산맥이 동으로 뻗어 내려오다 평지를 이루는 지점에 조성되어, 한때는 적촌현(赤村縣)이라고 불리며 현청이 있었고, 지금도 신등면 소재지로 600여 가구가 사는 작지 않은 마을이다. 
단계(丹溪)라는 말은 날씨가 건조하면 하천의 물이 붉게 보인다는 데서 유래했으며, 조선 초기까지는 단계 북부에 위치한 둔철산에 철을 주조하는 제련소가 있었기에 붙여진 지명이다. 또한 황매산 아래에 철수마을이 있는 등 아직도 쇠와 관련된 지명들이 많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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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멈추고 내렸다 하여 붙여진 ‘지마재’

동남쪽에서 이곳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반드시 멈춰야하는 곳이 있다. ‘지마재’(止馬峴)는 조선시대 하주지방(함안, 창녕 등) 사람들이 북쪽으로 가는 길목으로 이곳에서는 반드시 말을 멈추고 내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이유는 단계리 일원에 사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양반이라 말을 타고 그냥 지나가면 안 되고 말에서 내려 양반들에게 인사를 하고 말을 끌고 지나간 다음 다시 말을 타고 떠났다고 한다. 단계 동북쪽 지금의 수청마을 앞 2km 지점에는 도들막(말을 타기 위해 발을 딛고 올라 탈 수 있도록 한 곳)이 있고, 중북부 5km 지점에는 고무지(叩馬亭 : 말 엉덩이를 두들겨 달리다)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만석 가까운 부자, 적선과 배려 많이 해

이번 답사지는 경남문화재자료 제120호로 지정된 권씨 고가이다. 현재 후손인 권창혁씨의 소유로 선대부터 잘살아 한때는 만석에 가까운 부자였으며, 적선과 배려를 많이 하였다고 한다.
권창혁씨는 충강공(忠康公) 권도(權燾)의 후손으로 충강공이 나라에서 인정한 국불천위(國不遷位 : 큰 공훈으로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하락한 신위)로 인정되자 인근에서 찾아오는 손님이나 과객을 접대하고 유숙시키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솟을대문은 굳게 닫혀있고, 왼쪽 철 쪽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담장 곁에 서있는 안내판에  ‘이 고택은 안채 종도리와 상량문에 의하면 1919년 무렵에 처음 발견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안채와 사랑채 상량문을 보면 단기 4271년으로 적혀 있어, 즉, 서기 1938년에 상량을 했다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본식 구조 혼합‥간혹 일본사람도 방문

솟을대문 안쪽에는 내외벽이 서 있고 정면 4칸, 측면 1칸의 사랑채가 보인다. 우측 대문채는 최근에 세웠으며, 관리하시는 할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방향이 바깥을 향하고 있어 다시 세우며 안쪽으로 향하도록 했다고 하신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골기와 구조이다. 가운데 대청 북쪽에 우리나라 한옥구조에서는 볼 수 없는 제사지내는 특이한 공간이 눈길을 끈다. 안채나 사랑채 모두 하나의 건물에 수십 개의 방을 만든 것이 특이하다. 손님이나 과객의 유숙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며, 방이 모두 미닫이로 구성되어 여러 명이 미닫이를 열고 회의도 하고, 각지에서 모인 선비들이 유숙하며 시도 짓고 안부도 묻고 하였을 것이다.
그 외 곳간채와 별채, 뒷간채, 우물 등이 있으며, 뒷간채는 3부분으로 좌측은 화장실, 가운데는 헛간, 우측은 목욕창이다. 목욕탕 내부에는 물을 데우는 가마솥이 있고, 반대편에는 옷을 벗어 둘 수 있게 작은 마루공간을 만들어뒀다. 
이 집을 둘러보며 전체적인 구조나 배치가 우리 전통 한옥과는 조금 다르다고 느꼈는데 역시 일본식 구조가 혼합되어 간혹 일본사람이나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연구하러 온다고 한다.

주소 : 산청군 신등면 신차로 55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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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인 / 문화팀장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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