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9경 가’(歌)에 얽힌 사연

산청시대 2019-01-10 (목) 18:26 5년전 1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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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 지인들에게 보내고 싶은 간절한 마음

45년간의 공직생활 가운데서 비록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마는 산청에서 머물 수 있었다는 사실을 두고 나는 항상 고맙게 생각해 오고 있다.

1992년 9월 초에 산청교육청 근무를 시작으로 하여 3년간 일하는 동안에 만난 지역사회의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순수하고 다정하며 객지생활을 하고 있는 기관장들을 도우면서 소신껏 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신 덕분에 그야말로 마음 편한 생활할 수 있었다는 데 대하여 그 곳을 떠난 뒤로도 항상 고마운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가을 추수철이면 논가에서 잡아 끓인 추어탕, 송이버섯 반찬으로 초청만찬을 즐기기도 하고 계절에 관계없이 지역 유지들의 파젯날 아침식사 초청에다 여름날 경호강변 은어 회식, 철철이 일어나는 마을 잔치에도 스스럼없이 드나들며 나누던 인심들이라 그 정을 잊을 길이 없다.

이러한 배려에 힘입어 기관 간의 긴밀한 유대와 협조체제로 추진했던 특별한 사업도 기억에 생생하다. 교육행정의 목표로 잡았던 ‘선비정신 구현‘을 위한 교육활동에 군청과 교육청의 합작으로 추진한 가훈보급 운동에는 조진래 군수의 적극적인 지지와 협력으로 군내 전 가정에 가훈을 보급한다는 목표아래 각 가정에서 형식, 비형식으로 사용 중인 가훈이나 의견을 모아서 서예기능 우수교원들로 하여금 방학 동안에 글을 쓰고 군에서 만들어 보낸 게시용 액자에 넣어 전하는 등, 그야말로 협조체제가 완벽하게 가동되어 소기의 성과를 올리는 한편 초중학생 꿈나무 일기쓰기 활동은 군 농협지부에서 연간 일기장 제작비 전액을 지원해 주는 바람에 특색 있는 지역사업으로 추진하여 전국적인 시범사례가 되기도 했다.

그 사이 개인적인 취미활동으로 산청 땅 수려한 산수를 대상으로 간간히 적어본 글도 몇 편 얻었는데 이번에 빛을 보게 된 산청 9경가도 대부분 그 당시에 적어본 시조들이다. 내가 그곳에서 머물던 1990년대 중반에는 9경이라는 체계가 없던 터이라 그냥 적어 놓고 즐기며 지냈는데 산청을 떠나고도 한 참 뒤에 한방약초 축제장을 둘러보던 중 산청 명소 사진전 코너에서 9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여기에 관련된 글을 다시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정취암’을 보지 못했던 관계로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지나던 터에 작년 가을 산청에서 ‘청산회’ 모임이 있어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일행과 함께 ‘정취암’을 둘러보았는데 그 절경에 감동을 받고는 집으로 돌아와서 밤을 새워 시조 한 수를 마무리하게 되었던 바 이로써 ‘9경가’ 아홉수를 모두 완성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9경가’라는 제목으로 작품을 정리하려 하니 쓴 시기가 많게는 20년을 넘기는 경우도 있어서 서로의 맥이 통하지를 않고 분위기도 달라서 다시 손을 보느라고 서너 달 동안의 가슴앓이 끝에 비로소 오늘의 작품이 선을 보이게 되었으니 ‘9경가’로 빛을 보기까지 자그마치 4반세기가 걸린 셈이다.
어렵게 빛을 보게 된 글이라서 비록 서투른 작품이기는 하나 기해년 신년 특집으로 산청군민과 향우들께 ‘청산회’ 이름으로 먼저 전해 올린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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