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예찬6] 구형왕릉

산청시대 2019-03-22 (금) 08:55 3년전 1418  
왕릉을 처음 대한 느낌은 자리가 너무 한적하다는 점과 그 형태가 아주 특이하다는 점이었다. 그 짜임새가 풍기는 맛은 ‘릉’이라기보다는 한 개인의 별장을 연상케 했다. 이후 몇 번을 드나들면서 우리 역사에서 부침했던 여러 왕조의 마지막 군주에 얽힌 사연을 알아보고서야 비로소 그럴 수도 있었겠다 는 쪽으로 마음을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구형왕릉은 가락국 10대 구형왕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는 돌무덤이다. 구형왕은 김유신의 증조부로, 521년 가야국 왕이 되어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영토를 넘기기까지 11년간 왕의 자리를 지킨 분이다. 

다음백과를 중심으로 한 여러 기록들이 밝히고 있는 바에 따르면, 이 무덤이 왕릉이라는 근거는 <동국여지승람>과 <산음현 산천조>에 ‘현의 40리 산중에 돌로 쌓은 구룡이 있는데 4면에 모두 층급이 있고 세속에는 왕릉이라 전한다’라는 기록에서 비롯되었고 무덤에 왕명을 붙인 것은 조선시대 문인인 홍의영의 <왕산 심릉기>에 근거를 두고 있고 무덤 서쪽에 있던 왕산사라는 절에서 전해오는 <왕산사기>에 구형왕릉이라는 기록에 근거를 두고 있다.  

무덤의 형태는 일반무덤과는 달리 경사진 언덕의 중간에 높이 7.15m의 기단식 석단을 이루고 있는데 앞에서 보면 7단이고 뒷면은 비탈진 경사를 그대로 이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평지 피라미드식 층단을 만든 것과는 차이가 있으며 무덤의 정상은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fb4199d41d1f74565a15ac54aede4ce2_1553212

돌무덤 중앙에는 ‘가락국 양왕릉’이라고 쓰인 비석이 있고 그 앞에 석물들이 있는데 이것은 최근에 세운 시설물로 알려져 있다. 왕릉은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현 동의보감로 995)에 위치하고 있는데 1971년 2월 9일 대한민국 사적 214호로 지정되었으며 가까운 곳에 있는 ‘덕양전’에서 봄(음 3월16일)과 가을(음력 9월 16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소위 근대국가의 형태를 갖춘 조선왕조 이전의 경우에서 국운이 쇠락하여 사직을 마감해야했던 마지막 군주 가운데 백제의 의자왕과 고구려의 보장왕은 당시 망국의 원인이 된 당나라로 압송되어 갖은 고초를 당하고 그 곳에서 생을 마감하기에 이르렀고 유해는 이국땅에 묻히는 비운을 맞고 말았는데 지금 부여 능산리 고분에 있는 의자왕의 단소(壇所)는 유해가 묻혔다고 전하는 중국에서 2000년에 흙을 옮겨다 조성한 것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으니 주권국가의 후예들이 그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두고 부끄러움과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는 것이다.

단상

생각나는 얼굴들

지금 살고 있는 창원의 한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롯데 백화점은 영화를 보느라 간혹 들리고 있는 곳이다. 상영 시간에 따라 점심식사를 하기도 하여 점내 식당 두어 집을 번갈아 찾곤 하는데 엊그저께는 단골로 드나들던 한 식당이 사정이 있어 문을 열지 않아 처음에 자주 갔던 옆 가게를 이용하게 되었다.
마침 늦은 점심이라 조용한 분위기라서 식사를 주문하는 자리에서 식당 주인이 자기의 고향, 성씨와 부모 형제들 이야기가 조금 깊게 들어가나 했더니 그이 아버지가 내가 지금도 간혹 만나고 있는 학교 동기동창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자 내심 반가워서 여러 가지 관련되는 이야기를 나누기에 이르렀다.

산청에서 지내던 당시, 덕양전 행사나 학교 일로 자주 지나치던 금서면 화계리가 이분들의 고향이다.
금서면 하면 의례 떠오르는 김창석 씨와 강정희 씨는 당시 산청 지역사회를 이끌고 계시던 지도층 인사로 비교적 자주 만나는 사이였다. 김창석 씨는 산림조합장 일을 맡고 계셨고 강정희 씨는 산청군의회 부의장 일을 맡고 계셨던 분이다. 

군내 기관단체장 모임이 잦았던 탓에 공무와 친선의 의미가 물려있는 만남이었는데 유독 두 분과는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눈 것 같다.  
간간히 집으로 전화를 드리기라도 하면 반가움이 묻어나오는 맛이 남달랐는데 김 조합장님의 정겨운 화법은 20년을 넘기고 있는 지금도 그곳을 떠올리면 입가에 웃음이 스친다.
“조합장님, 잘 지내시지요, 지금 무엇하고 계십니까?”라는 평범한 첫 인사에도 어김없이 그 특유한 답이 돌아왔다.
“예, 지금은 교육장님의 전화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점잖고 너른 인품이 이웃을 편하게 해 주셨기에 지금도 그 어른을 잊지 못하게 하는 소중한 연결고리가 된 것이리라.

강 부의장님의 경우, 가을 수확철이면 해마다 기관단체장들을 집으로 초청하여 햅쌀밥에 그윽한 산채나물 향을 맛보게 해 주시던 그야말로 인심 좋고 정이 많은 어른인 데다가 그의 맏형이 학연으로 동직을 걸었던 친구였고, 자녀의 결혼 주례까지 서 드린 인연 등으로 그야말로 격의 없이 지내온 인연이다. 
강 사장에게 두 분의 근황을 물었더니 건강하게 고향을 지키고 계신다기에 반갑고 고마웠던 그 당시를 생각하며 정겨운 얼굴들을 그려 보았다. 그러고 보니 셋 모두가 젊은 황혼들이다. 
항상 건강하신 가운데 좋은 세월 즐기기를 빈다. 

시조
    
국운이 기울으니 사직을 물리시고
통한의 설움 안고 석릉에 잠드시니
산새도 지는 잎새도 길을 가려 가는가. 
 

fb4199d41d1f74565a15ac54aede4ce2_1553212
하늘에서 본 구형왕릉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정치
자치행정
선비학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