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준제 주필의 산청 역사 이야기(5) 덕산 국동마을에 펼쳐진 조선 사대부들의 유토피아

산청시대 2019-06-06 (목) 21:34 4년전 2400  

명암(明庵) 정식(鄭拭)과 무이구곡(武夷九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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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곡산 원리 세거지 ‘무이정사’라 명칭
1728년 최초로 건립해·18년 간 거주
구곡산 계곡 찾아 바위 이름 새겨놓아

주자학이 조선의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은 이래 당시 지식집단의 지향점이였던 주자가 무이산에 은거하여 경영한 무이구곡의 덕행과 그가 지은 ‘무이도가’(武夷櫂歌)는 조선의 수려한 산수경계를 ‘구곡원림’으로 재조명하는 문화적 유행으로 이끌어 왔다.
성리학 중흥기인 16세기에 퇴계 이황의 ‘도산구곡’, 율곡 이이의 ‘고산계곡’, 한강 정구의 ‘무흘구곡’ 등에 이어 명암(明庵) 정식(鄭拭: 1683∼1746)은 주자의 지조와 절개를 본받아 지리산에 ‘무이구곡’을 경영하며 구곡문화를 더욱 풍족하게 만들었다.

정식(鄭拭)의 자는 경보(敬甫), 호는 명암(明庵)으로 동지중추부사 대형(大亨)의 손자이며 주자에 대한 추앙은 남달랐다. 퇴계나 율곡 등은 세거지 인근의 산천을 무이산에 견주어 구곡(九曲)으로 설정하고, 다양한 형식의 ‘무이도가’(武夷櫂歌)를 남긴데 반해, 명암은 구곡산 원리의 세거지를 ‘무이정사’(武夷精舍)라 하고, 인근의 계곡을 골라 바위에 이름을 새겨놓았다.
무이정사(武夷亭舍) 옛 터는 와룡암에서 계곡을 끼고 비탈길로 올라가면 장대밭(시천면 원리 산 68번지/임야 34,512㎡)에 있었다. 명암 선생이 1728년 최초로 건립해 18년간이나 살았으며, 1746년 64세에 세상을 떠난 곳이다. 현재 국동에 있는 무이정사는 1933년 원래 자리가 아닌 국동마을에 중건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버리고 그 이후 다시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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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곡 수홍교(垂虹橋)
서신마을에 있는 관천대 바로 앞 다리가 수홍교 터다. 수홍교(垂虹橋)라면 ‘무지개다리’라고도 하는 홍예교를 말한다. 바로 옆 관천대와 덕천강이 어우러져 가히 제1곡이라 할 만 하였을 것이다. 수홍교 각자는 명암 막내아들 상화의 글씨다.

垂虹橋 詩(수홍교 시)

一曲虹橋繫小船(일곡홍교계소선) 첫째 구비 무지개다리에 작은 배 매어 있고 靈岑千疊發長川(영잠천첩발장천) 천 겹 신묘한 봉우리 긴 강물 시발했도다.
源頭有路無人過(원두유로무인과) 샘물의 근원에 길 있으나 지나는 사람 없고 空使溪山入暮烟(공사계산입모연) 쓸쓸한 계곡과 산에 저녁 연기 찾아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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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곡 옥녀봉(玉女峰)
시천면 원리 산 19번지에 있으며, 수홍교 계곡을 따라 20m여분 올라가면 조그마한 아름다운 산이다. 옥녀봉 각자는 명암 선생의 막내아들이 썼다.
玉女峯 詩(옥녀봉 시)
二曲嬋姸玉女峯(이곡선연옥녀봉) 둘째 구비 쳐다보니 옥녀봉이 아름답고 一溪流處?花容(일계류처잠화용) 시냇물 흐르는 곳마다 꽃모습 잠겨있네.

都消世慮探眞境(도소세려탐진경) 아름다운 곳 없어질까 염려되어 이곳을 찾으니無恙雲蘿鎖萬重(무양운라쇄만중) 구름과 담쟁이 잠겼으니 근심할 것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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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곡 농월담(弄月潭)
옥녀봉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큰 반석위에 연못처럼 형성된 아름다운 곳이다. 농월담에서 도솔암으로 향하여 계속 올라가면 도솔암교 다리를 건너게 된다. 이 다리 20m 못 미처 도로 우측으로 드러누운 바위에 '명암정식' 각자가 있다. 이 각자는 명암의 막내아들 글씨다.
聾月潭 詩(농월담 시)

三曲誰移壑底船(삼곡수이학저선) 셋째 구비 살펴보니 골짜기 밑에 누가 배를 옮겨 두었고 松枯壁老不知年(송고벽로불지년) 절벽에 늙은 소나무 그 나이 알 수 없네.

雙流亂瀑何時斷(쌍류란폭하시단) 두 줄기 거센 폭포 어느 때나 그치려나. 白首遊人實可憐(백수유인실가련) 늙어서 노는 이 참으로 가련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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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곡 낙화담(落花潭)
도솔암교 다리 아래로 들어가서 조금 올라가면 글자 그대로 소폭(小瀑)에서 물이 꽃잎처럼 떨어지며, 아담한 담(潭) 가운데 바위에 명암 선생의 가운데 아들 상문이 새긴 ‘낙화담’ 각자가 있다.

落花潭 詩(낙화담 시)

四曲屛圍十丈巖(사곡병위십장암) 넷째 구비 돌아서니 열길 바위 병풍처럼 둘러있고 落花隨浪泛??(락화수랑범람삼) 낙화는 물결 따라 길게 떠 있네.

坐來休歇忘辛苦(좌래휴헐망신고) 외로움을 잊고 앉아 쉬고 있으니 惟見蟾光射碧潭(유견섬광사벽담) 오직 달빛만이 푸른 못을 비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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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구곡 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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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곡 대은병(大隱屛)
낙화담에서 10분 거리 ‘도솔암’ 아래 건너편 다섯 굽이 계곡, 넓은 청돌 바위에 명제를 바꾸어 ‘난가암’(爛柯巖)이란 세 글자가 가느다란 획도 망가지지 않은 채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그러나 제4곡인 낙화담을 지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대은병’ 각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에 명암선생이 ‘도암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나열한 9곡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던 ‘난가암’(爛柯巖)이 나타난다.
명암 선생이 주자의 ‘대은병’에서 따온 이름으로 제5곡을 명명한 이후 ‘대은병’ 시를 지어놓고 보니 문장에 들어있던 난가처가 신선놀음하기 좋은 곳에 더욱 그럴듯하여 ‘난가암’ 각자를 남긴 것이라 추정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각자는 가운데 아들 상문의 글씨다.

大隱屛 詩(대은병 시)

五曲雲山去去深(오곡운산거거심) 다섯 구비 구름산 멀리 그 모습 감추고 閒來無語倚楓林(한래무어의풍림) 말없이 몰래 와서 단풍 숲에 의지하네.

千秋一局爛柯處(천추일국란가처) 이곳에 오래 머무니 세월 가는 줄 모르고 移得箕山洗耳心(이득기산세이심)소부와 허유의 ‘기산’ 세이를 알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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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곡 광풍뢰(光風瀨)
제5곡 난가암을 지나고 나서 제6곡까지는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다. 광풍뢰란 ‘맑은 햇살과 함께 부는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는 여울’이란 뜻이다. 광풍뢰 각자는 가운데 아들 상문의 글씨다.

光風瀨詩(광풍뢰 시)

六曲蒼巖枕曲灣(륙곡창암침곡만) 여섯 굽이 푸른 바위 베개 삼아 굽은 물굽이 雲扉無客晝常關(운비무객주상관) 구름 문짝 종일 다져 손님 없구나.

光風瀨氣盈襟夜(광풍뢰기영금야) 맑은 바람 맑은 기운 밤 옷깃 가득 찬데 任得人間分外閑(임득인간분외한) 사람들은 분수 밖에 큰 것을 마음에 가지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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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곡 제월대(霽月臺)
광풍뢰를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양쪽에서 내려오는 계곡이 합해지는 합수부에 너른 반석이 있고, 도솔암에서 올라오는 반듯한 등산로를 만나게 된다. 합수부 너른 반석이 제월대다.
광풍뢰 다음 제7곡에 제월대가 나오는 것은 ‘광풍제월’ 혹은 ‘제월광풍’이 한 쌍으로 “광풍제월(光風霽月)(비 온 뒤의 바람과 달이란 뜻으로 깨끗하고 맑은 마음)과도 같다”고 한데서 유래한다. 제월대 각자는 명암 선생 큰아들 상협의 글씨다.

霽月臺 詩(제월대 시)

七曲?吟霽月灘(칠곡침음제월탄) 일곱 구비 달 밝은 여울가 생각에 잠겨 分流層瀑獨耽看(분류층폭독탐간) 흐르는 층층 폭포 혼자 즐기네.

然睡裏羲皇近(거연수리희황근) 伏羲氏(복희씨) 좋아서 즐거이 졸면서 松韻泉聲入夢寒(송운천성입몽한) 솔소리 물소리 들으며 꿈속으로 들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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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곡 고루암(鼓樓巖)
계곡 삼각 지점에서 10여분 거리에 큰 바위가 있는 데 이 자연석이 고루암이다.
등산로가 양쪽으로 갈라가는 제월대에서 구곡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좌측 등산로 계곡 쪽으로 각자를 찾을 수 있다. 제월대 각자는 큰아들 상협이 새겼다.

鼓樓巖 詩(고루암 시)

八曲身安眼豁開(팔곡신안안활개) 여덟 구비 몸이 편안하고 눈앞이 넓게 열려 樓巖上笑忘回(고루암상소망회) 고루암 위 ‘고누’는 회전을 잊고 웃고 있구나.

人間樂處無如此(인간악처무여차) 사람들은 이와 같은 즐거운 곳을 모르고 未見高朋自遠來(미견고붕자원래) 먼데서 와서 높은 ‘누대’를 보지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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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곡 와룡폭(臥龍瀑)과 연화대(蓮花臺)
고루암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용이 엎드려 서리고 누워있는 바위에서 쏟아지는 폭포를 이른다.
용담의 높이는 10m로 마지막 제9곡다운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와룡폭은 규모나 형상으로 지리산의 폭포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명품폭포다.
마치 하늘 중간에 떠 있는 듯 압도할 장관이 펼쳐지는 곳이다. 와룡폭 위에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비행선처럼 웅장하게 서 있는 자연석의 대가 있는데 바로 연화대이다.
와룡폭은 이 연화대가 있음으로 더욱 신비감을 자아낼 뿐 아니라, 와룡폭은 연화대에 올라 바라볼 때 제대로 볼 수 있다. 와룡폭 각자 명암 선생 큰아들이 썼다.

龍瀑 詩(와룡폭 시)

九曲龍巖勢屹然(구곡룡암세흘연) 아홉 구비 용바위 우뚝 솟아 그 기세당당하고 瀑流千丈落成川(폭류천장락성천) 천 길 폭포 떨어져 냇물 이루네.

探源莫道藏?僻(탐원막도장종벽) 숨겨진 근원 찾으러 가지를 마오. 獨閉明窓作一天(독폐명창작일천) 밝은 창가 홀로 앉아 자연소재 시를 짓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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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지종학 님과 강호원 님의 자료와 사진을 부분 인용하였으며, 정보와 자료를 제공해 주신 ‘무이정사’ 정은석 님과 정태종 님께 감사드립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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