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예찬10] 정취암 조망

산청시대 2019-07-31 (수) 23:37 2년전 1021  

정취암(淨趣庵)은 산청군 신등면 대성산에 자리한 사찰로 암자 모습도 빼어나게 아름답지마는 절 앞으로 펼쳐진 정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고 있어 산청 9경 가운데 제8경으로 올라 있다. 깎아지른 절벽에 매달리듯 자리하여 ‘절벽 위에 핀 연꽃’이란 애칭도 가지고 있어 그 아름다움은 일찍부터 널리 알려져 있는 상태이다.

정취암(淨趣庵)은 신라 신문왕 6년 (686)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정취사로 불려오다가 조선 후기부터 정취암으로 불려오는데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정취관음보살을 본존불로 모시고 있는 절이다. 경내의 산신탱화(제243호)와 목조관음보살좌상(제314호)은 경상남도가 문화재자료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빼어난 조망이 하도 소문이 나 있기에 구체적인 해설을 듣고 싶었는데 마침 한 보살님의 도움으로 주지 수완 스님과 연결이 되어 확실한 해설을 들을 수가 있었다.
절 앞 건너 쪽으로 확 트인 벌판은 신안면 청현들과 신등면의 단계들이 하나로 엮여서 광활한 정경을 이루고 들이 끝나는 저 편으로 어깨를 겯고 있는 아련한 산은 오른 쪽의 진주 집현산을 시작으로 해서 왼 쪽으로 함안 함어산, 의령 자굴산이 펼쳐지고 그 뒤쪽으로는 고성의 연화산과 창원의 불모산이 겹겹으로 진을 쳤고 왼쪽 끝으로는 대구 팔공산, 비슬산에 이르기 까지 마치 병풍처럼 울을 짜고 연출한 모습들이 정취암에서 바라보아 황홀하리만치 아름답고 참으로 예쁜 그림이다.

주지 스님께서 하도 상세하고 시원하게 해설해주시는 바람에 한동안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그림 속으로 빠져들었던가 싶다.
수완(修完) 스님은 20년을 넘게 이 곳에 머무시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면서 사바 대중에게 전하느라 분망한 일상에도 불구하고 암자로 오르는 가파른 오름길을 다듬어 차도까지 닦아서 오늘의 정취암을 절경으로 가꾸신 열정을 생각하니 그 짙은 불심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암자 입구에 선 안내판에 적힌 한시가 수완스님의 작품이라기에 다시 읊조리며 그 높은 마음의 경지를 읽어 보았다. 시심(詩心)이 불심(佛心)과 어우러져 빚어 낸 좋은 글귀라 필경 불멸의 자리는 이미 잡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絶巖懸淨趣(절암현정취) 山川一望通(산천일망통)
萬壑白雲起(만학백운기) ?門淡塵跡(구문담진적)

 78a5f3f5d2d34e7eafd8522db8c62458_1564583
8경(정취암조망)

<시조>

벼랑에 몸을 사려 사바를 아우르니
아득한 산과 들이 불전에 조아리고
관음은 법당문 열고 화엄경을 설한다

 

[단상]            

9경가 완성의 계기

지난해 9월10일, 산청에서 청산회 모임을 가졌다. 산청에 거주하는 회원 세 사람과 부산, 김해, 창원에 사는 세 사람 등, 모두 여섯 사람이 지품의 산골식당에 모였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회를 맡아 수고하시던 오철희 회장님이 그간의 모임 전반에 관한 주요 사정을 이야기 하고 앞으로는 산청에 거주하는 회원이 회장을 맡는 것이 모임의 관리에 효율적이겠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자 모두가 동의를 해서 정기탁 회원을 회장으로 추대하고 업무를 인계해서 자연스럽게 모양새를 갖추었다.

돌아오는 길에 정취암(淨趣庵)에 들렸다. 산청 9경 가운데 유독 이 곳을 보지 못해 항상 풀어야 할 과제로 생각해 오던 터라, 일행을 권유해서 들렸는데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돌벼랑에 안긴 듯 절집 대여섯 채가 어우러진 모습은 마치 제비집을 연상케 하여 예를 갖추는 일도 잊은 채 뜰 건너편으로 펼쳐진 그림에 할 말을 잊고 한동안 정신없이 절간 주변을 둘러보고서야 법당으로 들어가 불전에 예를 갖추고 잠시 쉬면서 암자의 내력도 더듬어 보고 사진도 몇 장 만들 었다. 

암자에서 받은 느낌이 얼마나 가슴을 설레게 했던지 그날 밤으로 글 한 편을 마무리 하고 나니 산청 9경에 관한 글을 이제야 마무리 하게 되었다는 만족감으로 전에 써 둔 시조 여덟 수를 꺼내어 확인함으로써 9경가의 모양새를 갖추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날의 산청 모임이 가지는 의미나 무게가 다른 날의 만남보다 훨씬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마산의 한 직장 행사로 오른 지리산 천왕봉을 내용으로 쓴 시조가 산청의 첫 작품이었는데 이번 작품으로 해서 20여년을 헤아리는 세월에 마무리를 하게 되었으니 정취암에 대한 감회도 유달리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정치
자치행정
선비학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