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룡 서울특별시 광역의원의 고향 사랑

산청시대 2019-10-30 (수) 09:42 4년전 1930  

“고향 덕 봤으니, 고향 위해 봉사할 의무 있어”

 

친일척결·역사바로잡기 등 시민운동
독도간도연구소장 거쳐 시의회 진출
‘일본전범기업제품구매제한’ 조례도

중산마을 출신‥중산초·덕산중 나와
“스토리 있는 산청관광상품 개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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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여천(事民如天),
 국민을 하늘같이 섬기고
 ‘강한 대한민국’과
 ‘차별 없는 사회’ 만들겠다

“내 고향 중산리는 어머니 삶의 역사가 곳곳에 남아 있는 곳이다. 9남매 막내로 태어났는데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어머님은 5남매를 가슴에 묻고 계셨다. 제가 태어나던 해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4남매를 홀로 키우시느라 중산리를 반경으로 100리가 넘는 지리산 곳곳을 누비셨다. 봄이면 봄나물을 채취해 말려 파셨고, 계단 논 네 마지기 농사를 지으시고, 겨울이면 조릿대와 땔감을 하셨기에, 어릴 적 어머님이 단 하루도 쉬시는 날을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의 주름지고 거친 손으로 끓여주던 된장찌개 한 그릇만으로도 무한한 힘을 받았었다. 지금은 고향 생각에 때론 가슴 아리고 때론 눈물이 흘러내리지만 찾을 때마다 큰 힘을 얻는 곳이다.”
  
홍성룡(54) 서울특별시 광역의원은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산청군 시천면 중산마을에서 태어났다. 홍 의원은 폐교한 중산초등학교(10회)와 덕산중학교(20회)를 나왔으며, 한양대학교에서 박사과정(행정학과)을 수료했다.
홍 의원은 지금까지 시민운동에 몸을 담았다. 그의 인생은 친일파 척결과 우리 역사바로잡기에 점철돼 있다. 2011년부터 독도향우회 회장과 2015년부터 독도간도역사연구소 소장을 지냈으며,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의회에 진출했다.
<본지>는 지리산 정기로 서울시 의정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홍성룡 서울시 의원을 만나보았다.

-독도에 많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어릴 적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근현대사를 배우면서 일본의 침탈에 제대로 힘 한번 쓰지 못하고 나약하게 나라를 빼앗기는 과정에서 어린 마음에 많이 아파했었던 것 같다. 친일인명사전 제작 후원활동도 하고 자연스럽게 독도, 간도 등 우리나라의 영토에도 관심을 가졌다. 1999년 일본인들이 독도로 본적을 옮겼다는 뉴스를 접하고 2000년 4월 우리 가족은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30번지’로 본적을 옮겼다. 독도로 본적을 옮긴 사람들이 만든 독도수호단체가 독도향우회다. 제가 84번째 쯤 독도로 전적했는데 지금은 3,300명이 넘었다.”

-독도에 대한 의미를 부여한다면.
“독도는 단순한 영토가 아니다. 식민지 시대에 침탈된 우리민족의 한과 얼이 서린 곳이다. 또 군사적 요충지로 태평양으로 뻗어 갈 수 있는 전진기지다. 독도 실효적지배 강화를 위한 방안을 찾고 실천해야 한다. ‘독도를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는 경구처럼 독도는 대한민국의 심장이다. 그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정치 입문한 동기가 있나.
“대외적으로는 ‘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었다. 독도를 지켜내고 간도를 되찾는 것 모두 강한 나라를 만들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1876년 강화도 조약 강제체결 이후부터 1905년 을사늑약, 1907년 군대 강제해산, 1910년 경술국치 과정을 수없이 복귀해서 다시는 그런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회 문제도 관심이 있을 것 같다.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었다. 빈부차별, 남녀차별, 지역차별, 노사차별이 없고 중앙과 지방의 차별이 없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부자와 강자는 약자를 배려하고 베풀려고 노력하고 약자는 부자를 이해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다. 각론은 쉽지 않겠지만 ‘상호 존중과 배려’로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다. 정치인들이 더 많이 노력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조례제정에서 뜻 깊은 일이 있다면.
“9월 6일 통과한 ‘일본전범기업제품 공공구매제한’ 조례가 있다. 전국 최초로 제가 대표 발의한 조례인데, 국민들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공공구매에서 일본전범기업 제품을 제한하는 조례다. 과거 만행에 대해 사죄하지 않고 배상하지 않는 일본에게 우리의 자존심을 찾고자 함이었다. 물론 경제적 이득도 엄청 클 것으로 예상된다. 강제징용으로 희생되신 우리들의 아버님, 위안부로 끌려가 청춘을 강탈당한 우리들의 어머님들께 작은 선물을 드린 것도 위안이다. 저와 뜻을 공감하는 전국 17개 광역시도의회 의원님들께 조례제정을 도와드리며 함께하고 있다.”  

-산청은 어떤 부분이 발전되었으면 좋을지.
“결국 관광상품 개발이다. 올 7월 초 산청출신 두 선배님(정연호 변호사, 박상병 정치평론가)과 중국 시안을 다녀왔다. 진시왕릉, 병마용, 화청궁, 화산, 한국광복군 제2지대 본부, 흥국사, 대안탑, 진2세황제묘, 장안성 등 세 명 모두의 관심사인 역사기행이었다.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산청 발전 등의 얘기가 많았다. 산청도 시안 못지않게 관광자원이 많다. 화산보다 더 아름다운 지리산이 있기에 스토리 개발에 힘써주면 좋겠다. 지리산 둘레길 스토리, 허준 스토리(동의보감촌), 문익점 스토리(면화 시배지), 성철스님 스토리(겁외사, 대원사), 남사예담촌, 남명 선생 스토리(덕천서원, 산천재 등), 박항서 스토리, 철쭉 스토리(황매산, 세석), 빨치산 스토리(중산리, 내원사), 곶감 스토리, 딸기 스토리, 산나물 스토리 등 자원이 무수히 많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나.
“현재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유불리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 정치를 하는 것, 정치가가 아닌 정책가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 정치에 입문했을 때의 초심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계획이기도 하다. ‘강한 대한민국’과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정책을 만드는 시간을 늘려가겠다.”

-지금까지 가져온 좌우명을 소개한다면.
“사민여천(事民如天)이다. 국민을 하늘같이 섬기는데 소홀함이 없도록 늘 노력하고자 한다.”

-끝으로 고향 분들과 향우들께 당부 말씀.
“산청군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고향으로 가진 것을 너무나 감사하면서 살고 있다. 산청 출신 훌륭한 인재들도 많다. 산청 출신 향우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일을 늦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분들은 산청군을 알릴 홍보대사로 적격이다. 고향의 덕을 봤으니 고향을 위해 봉사할 의무도 있다. 가끔 호남향우회 행사에 가보면 부러운 것이 많다. 피보다 향우애가 진함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 게시물은 산청시대님에 의해 2019-10-30 09:45:21 정치에서 복사 됨] http://scsnews.kr/bbs/board.php?bo_table=B22&wr_id=598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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