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 선생의 유적지를 따라(1)

산청시대 2017-02-08 (수) 10:16 7년전 2911  

백성을 물로 본 칼 찬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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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을 물로 본 선비가 있다. 백성들 마음은 위험하다 말하지 말라고 한 선비는 칼을 찼다. 심지어 방울도 달았다. 선비는 조선 시대 선조를 위해 <민암부>를 지었다.

 

‘~배는 물 때문에 가기도 하지만, 물 때문에 뒤집히기도 한다네. 백성이 물과 같다는 소리, 옛날부터 있어 왔다네. 백성들이 임금을 떠받들기도 하지만, 백성들이 나라를 뒤집기도 한다네~임금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편안하게 되기도 하고, 임금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위태롭게 되기도 한다네. 백성들의 마음 위험하다 말하지 마소. 백성들의 마음은 위험하지 않다네.’

 

지리산으로 가는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한편 산기슭에 ‘입덕문’(入德門)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조선 시대 명종 6년(1561) 남명 조식 선생이 삼가에서 덕산으로 오면서 천연 ‘석문’(石門)을 ‘입덕문’(入德門)이라 명명한 곳이다. 도로가 확장되면서 옛 풍광을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 한 지역민들이 입덕문 보승계를 만들어 ‘입덕정’을 신축하고 암벽에 새겼던 각자를 떼어서 현재 자리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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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입구에 있는 남명기념관에 들어서면 몇 백 년 묵은 산수유나무들이 반기고 왼편으로 커다란 은행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은행나무 너머로 남명 조식 선생 상(像)이 보인다. 선생 조각상 좌우로 우암 송시열이 쓴 신도비와 우리 글로 옮긴 상소문을 적은 비가 연달아 4개가 나온다.

남명 선생 동상과 신도비, <을묘사직소> 국역비 등이 남명기념관 앞에 세워져 있다. 명종이 (1555년) 단성현감을 제수하자 남명이 단호하게 사직하며 올린 <을묘사직소>(乙卯辭職疏) 국역본을 찬찬히 읽었다.

 

‘~전하, 나랏일은 이미 잘못되었고 나라의 근본은 이미 없어졌으며 하늘의 뜻도 이미 떠나버렸고 민심도 이미 돌아섰습니다. 큰 고목이 100년 동안 벌레 속이 패어 그 진이 다 말라버려 언제 폭풍우를 만나 쓰러질지 모르는 지경에 이른지 이미 오래입니다. ~낮은 벼슬아치는 아랫자리에서 시시덕거리며 술과 여색에 빠져 있고 높은 벼슬아치는 윗자리에서 빈둥거리며 뇌물을 받아 재물 불리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오장육부가 썩어 배가 아픈 것처럼 온 나라의 형세가 안으로 곪을 대로 곪았는데도 누구 한 사람 책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비(문정왕후)께서는 신실하고 뜻이 깊다 하나 구중궁궐의 한 과부에 불과하고 전하는 아직 어리시니 다만 돌아가신 임금님의 한 고아에 불과합니다. 백 가지 천 가지로 내리는 하늘의 재앙을 어떻게 감당하며 억만 갈래로 흩어진 민심을 어떻게 수습하시렵니까. ~임금으로서의 원칙을 세우십시오. 임금에게 원칙이 없으면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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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은 자신을 한 고아에 불과하고 어머니인 문정왕후를 구중궁궐의 한 과부라고 한 내용에 격분했다. 결국, 언로를 막을 수 없다는 신하들의 만류에 명종은 벌을 줄 수 없었다.

 

목숨을 내건 진언에 고개가 절로 숙인다. 사직소를 읽고 기념관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의 마음((神明)이 머무르는 집(舍)을 그린 <신명사도>(神明舍圖)가 먼저 반긴다. 남명 선생이 마음의 안과 밖을 잘 다스려 지극한 선의 경지에 도달하는 이치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마음의 작용을 임금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비유하여 도식화한 것이다. 신명사도는 사람의 마음을 지키기 위한 결연한 의지를 성곽으로 드러내고 마음을 다스리는 요체를 경(敬)과 의(義)로 실천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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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사도 옆으로는 <학맥도>가 선생의 학맥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선생의 생애를 찬찬히 관람하면서도 걸음이 멈춘 곳이 있다. 선생께서 ‘경의’를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일깨우기 위해 허리춤에 늘 차고 다닌 ‘성성자’(惺惺子)방울과 ‘경의검’(敬義劍)이라 부르는 한 자루의 단검이 있다. 걸을 때마다 방울 소리가 울리고 울릴 때마다 몸가짐을 살피고 반성했던 성찰의 방울이다.
‘내명자경’(內明者敬)과 ‘외단자의’(外斷者義)라는 글자가 새겨진 ‘경의검’은 ‘안으로 나를 깨우치는 것은 경이고, 바깥으로는 결단 있게 행동하는 것이 의’라는 뜻이다. 옮고 그름을 제대로 배워 실천하라는 선생의 뜻이 칼에 아로새겨져 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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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해찬솔 김종신씨는 산청군 SNS기자단원으로 현재 성심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블로그: 해찬솔 일기 (
http://blog.daum.net/haechansol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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