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세상을 일깨우다(6)

산청시대 2021-05-30 (일) 23:44 25일전 163  

‘산해정 앞뜰 만개한 매화를 화담에게 보내고 싶다’

남명과 화담의 우정과 시

 

 
김해 ‘남명 정신문화 연구회’에서 초청이 왔다. 남명 선생에 관한 좋은 이야기를 해 달라는 것이다. 고맙고 황송한 일이다. 선생의 후손이기는 하지만, 귀한 활동을 하시는 타관 사람들께 무슨 이야기를 하겠는가?
시간 여유가 있어 함허정涵虛亭 옛터와 봉황대鳳凰臺를 둘러보았다. ‘봉황대 공원’은 가야 고도의 공원답게 잘 가꾸어져 있고, 황세 장군과 여의 낭자의 애달픈 전설이 서려 있다.
함허정은 연산군 4년(1498) 김해 부사 최윤신이 지었다. 함허정이라 명명한 것은 어세겸(1430~1500)이고, 탁영 김일손(1464~1498)이 기문을 썼다.
그 기문에, ‘… 파사탑婆娑塔의 남쪽에 네모난 연못을 파고, 호계虎溪의 물을 끌어다 채워놓고, 그 물 가운데 섬을 만들어 점대漸臺를 형성하고 그 위에 집을 지어 띠를 덮어 정자가 되게 했다.’라고 했다.

그 뒤 명종2년(1547) 다시 짓고 남명 선생이 기문을 썼다. 가정 정미년(1547) 봄에 영공 김수문(1506~1568)이 정자를 넓게 고쳤다.
‘…사방이 조용하여 묵묵히 깨달으니, 9백 리나 운몽雲夢이 모두 하나의 거울 속에 담겨 있는 듯하다. 만물 가운데 태허 太虛보다 알찬 것이 없다. 비어 있으면서 함양涵養하여 순백의 상태로 만들어, 안을 방정히 하고 밖을 제어한다. 이와 같은 것을 본 자가 정자를 편액하고 그런 소문을 들은 자가 정자를 지었던가?’

지금은 그 자리에 정자는 없어지고 ‘연화사’라는 포교당이 들어서 있다. 옛 주춧돌 등의 흔적이 남아있다. <김해 향교지>를 상고해보니, ‘일제 말기 이모 군수의 농간으로 불교 포교당으로 변신하였고, 1969년 4월 4일 화재로 전소되었다. 그 뒤에 김한수, 김택수 양씨가 불교 포교당인 연화사를 세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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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정이 있던 자리


‘연루원조燕樓遠照(연자루에서 바라보는 먼 경치)’, ‘함정로우涵亭露藕(함허정에 핀 이슬 머금은 연꽃)’로 김해 8경에 들었고,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영남 3대 루에 들었다고 하는 역사가 사라졌으니 가슴 아픈 일이다. 가야 시대부터 고려 조선을 거치며 여러 번 고쳐 지어 관리해 오다가 일제 강점기에 연자루燕子樓가 없어지고, 함허정도 없어진 것이다. 당시의 번성했던 모습과 정조情操는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김해 ‘남명 정신문화 연구회’ 창립 정신을 김석계 변리사로부터 들었다. “김해시에 기업체가 만개 정도 있다. 기업에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남명 정신을 그 기본정신으로 삼아 사업을 하자.” 이런 뜻이라고 한다. 대단한 운동이다. 마치 중국 북송 때 ‘남전여씨향약藍田呂氏 鄕約’이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미쳤듯이 기업도 남명 정신을 지니고 하자는 운동이다.
이분들은 남명 선생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알고 나는 이날 저녁 이야기 소재를 ‘남명과 화담의 우정과 시詩’로 했다. 두 선생의 같은 것 같으면서 다른 현실 인식과 처세관을 두 분의 시를 통해서 알아보자는 것이다.

술회述懷(회포를 풀다)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1489~1546)

讀書當日志經綸(독서당일지경륜) 글을 읽던 시절에는 경륜을 뜻했건만,
晩歲還甘顔氏貧(만세환감안씨빈) 늙어 감에 안자의 안빈락도 만족하네.
富貴有爭難下手(부귀유쟁난하수) 부귀는 다툼이 많아 손대기 어렵지만,
林泉無奈可安身(임천무내가안신) 임천은 아무 금함 없으니 내 몸이 편안하네.
採山釣水堪充腹(채산조수감충복) 산에서 나물 캐고 물에서 고기 낚으니 굶을 걱정 아예 없고,
詠月吟風足暢神(영월음풍족창신) 자연 속에 음풍영월하며 내 마음은 만족하네.
學到不疑知快活(학도부의지쾌활) 공부는 의문 없는 경지에 이르니 유쾌하고,
免敎虛作百年人(면교허작백년인) 얽매어 헛된 인생 안 보내게 되었구려.

차서화담운次徐花潭韻(서화담 시에 차운하다)

남명 조식(南冥 曺植)
秋江疎雨可垂綸(추강소우가수륜) 가을 강 부슬비 오니 낚시 드리움 직하고,
春入山薇亦不貧(춘입산미역부빈) 봄 들자 산 고사리 나니 가난하지 않다네.
要把丹心蘇此世(요파단심소차세) 일편단심은 이 세상 소생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는데,
誰回白日照吾身(수회백일조오신) 그 누가 밝은 해를 돌려 이내 몸 비춰 줄고
臨溪鍊鏡光無垢(임계련경광무구) 시냇물에 거울 닦으니 번쩍번쩍 때 없고,
臥月吟詩興有神(와월음시흥유신) 달 아래 누워 시 읊조리니 신나는 흥취 있네.
待得庭梅開滿樹(대득정매개만수) 뜰의 매화가 가득 필 때를 기다려,
一枝分寄遠遊人(일지분기원유인) 한 가지 꺾어서 그대에게 보내리.

서화담은 남명 선생이 46세 때에 별세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남명 선생이 김해에 계실 때 지은 것이리라. 화담은 1531년 생원시에 장원하였으나 벼슬에 나갈 생각이 없었다. 1544년 추천으로 후릉厚陵 참봉에 임명되었지만 나가지 않았다. 사후에 우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가 문강文康이다. 시를 보면 화담도 원래는 세상에 나가 경륜을 펼 뜻이 있었다가, 나이 들어감에 따라 안자의 안빈낙도하는 길을 택한 것을 알 수 있다. 부귀는 남과의 경쟁 관계라서 어렵지만, 임천에 낙도 하는 것은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 없으니 어렵지 않다고 하였다. 공부가 불의不疑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헛된 평생 보냈다 소리는 듣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남명 선생의 시는 더욱 적극적이다. 승구承句를 보자, 나의 단심丹心은 세상을 소생시키는 데 있다, ‘그 누가 백일白日을 돌려 내 몸을 비춰 줄 것인가?’ 하는 대목에는 독자로 하여금 탄식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섬길만한 임금이 있으면 나가겠다는 뜻 아닌가. 불우한 선비의 고뇌하는 모습을 본다. 전구轉句는 그래도 학문 도덕을 연마하며 시절을 한탄하고 있는 마음이 나타난다. 결구結句는 두 분의 우정이 너무 진하고 멋지다. ‘산해정 앞뜰의 매화가 만개할 때를 기다려, 그 매화 한 가지를 꺾어 멀리 있는 화담, 그대에게 보내고 싶다’라고 했다. 이 비유는 중국 남조 시대 육개陸凱라는 사람이 범엽范曄과 우정이 두터웠는데, 강남에서 매화 한 가지를 꺾어서 역사驛使를 통해 장안에 있는 범엽에게 보냈다는 고사에 연유한 말이다. 요즘 말로 택배로 부쳤다는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우정인가?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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