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은 나라를 엎을 수도 있는 위험한 존재’

산청시대 2021-06-29 (화) 05:40 2년전 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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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선생 초상화

이번에 다루려 하는 내용이 남명 선생의 민본사상이다.
대강만 보면 저 참혹한 기축옥사가 선생의 민본사상과 관련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먼저 유교의 목표하는 바가 수제치평修齊治平, 즉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먼저 자신을 수양하고 집안을 잘 다스린 다음에 나라를 다스려서 왕도정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사회 나라를 만들려는 선비들의 노력이 계속해서 있어 왔다. 수많은 사화와 지식인(선비)들의 수난은 현실에 안주하려 하지 않고 자기 몸과 집안을 희생해 가면서 노력해 왔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지만 우리나라가 정조 임금 이후 실학운동이 일어났을 때 ‘좀 더 정신을 차렸으면 망국의 한은 없었을 것을’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기축옥사에 1천여 명의 인재를 제거한 3년 뒤, 미증유의 큰 전쟁 임진왜란이 일어났으니, 나라에 인재가 없었다 했다.
 
선생의 ‘민암부’(民?賦)를 살펴보자.
민유수야民猶水也 고유설야古有說也(백성이 물과 같다는 말은, 예로부터 있었으니)
민즉대군民則戴君 민즉복국民則覆國(백성은 임금을 받들기도 하지만, 백성은 나라를 엎어버리기도 한다.)
오고지가견자수야吾固知可見者水也 험재외자난압 險在外者難狎(내 진실로 알거니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물이니, 험함이 밖에 나타난 것은 만만하게 보기 어렵지만,)
소불가견자심야所不可見者心也 험재내자이설險在內者易褻(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마음이니, 험함이 안에 감추어진 것은 만만하게 보기 쉽다.)
 
민암(民巖)은 ‘백성은 나라를 엎을 수도 있는 위험한 존재’라는 말이다. <서경>(書經)에 나오는 말이니, ‘통치자는 백성을 사랑하여 편안히 살도록 해야 한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있어 온 말인 것이다. 그러나 물의 험한 것은 눈으로 보이지만 사람의 마음은 눈으로 보이지 않으므로 만만하게 보아 민심을 잘 읽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암험함의 근원을 찾아보면,
진실로 임금 한 사람에게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 사람의 불량함으로 말미암아, 여기서 위험이 가장 크게 된다네.
궁실이 넓고 큼은, 암험巖險함의 시작이요.
여알女謁이 성행함은, 암험의 계단이요.
세금을 끝없이 거두어들임은, 암험함을 쌓음이요.
도에 넘치는 사치는, 암험함을 일으켜 세움이요.
부극?克이 자리함은, 암험으로 치닫는 길이요.
형벌을 자행恣行함은, 암험을 돌이킬 수 없게 함이다.

백성들이 성난 물처럼 배를 뒤집어엎는 것은, 그 근본을 헤아려 보면 임금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선생은 보았다.
그 백성이 위험해지는 것은 단계가 있다. ▲관청 건물을 너무 크게 짓는 것, ▲임금의 처가 외가 즉, 측근을 너무 가까이하는 것, ▲지나치게 세금을 많이 거두어들이는 것, ▲도에 넘치는 사치, ▲권세를 이용하여 금품을 챙겨 부당한 이득을 차지하는 것, 이런 것들이 백성을 암험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원한이 한 사람의 마음속에 싹틀 적에는 매우 사소하고 보잘것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늘은 보고 듣고 있다는 것이다. <맹자> 孟子 만장萬章에 ‘하늘의 보심은 우리 백성이 보는 것을 따르고, 하늘의 들으심은 우리 백성의 듣는 것에 따른다’고 했다. 결국, 옳지 못한 생각과 행동이 하늘로부터 벌을 받아 백성이 성난 물결처럼 그냥 두지 않게 만든다는 것이다.

선생은 민암부에서 걸桀·주紂가 탕湯·무武에게 망한 것이 아니라, 백성에게 신임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며, 한나라를 창업한 유방劉邦은 보잘것없는 백성이었지만, 필부 匹夫로서 천하를 차지한 것은, 이처럼 큰 권한이 다만 백성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은 하해河海보다 더 큰 것이 없지만,
큰바람이 아니면 고요하고,
암험함은 민심보다 위태로운 것이 없지만,
포악한 임금이 아니면 다 같은 동포인 것을,
동포를 원수로 생각하니, 누가 그렇게 하도록 하였는가?
  …
나로 말미암아 편안하기도 하고,
나로 말미암아 위태롭기도 하니,
백성을 암험하다 말하지 마라!
백성은 암험하지 않느니라.

선생은 벼슬길에 나간 적은 없다. 나라의 현실을 태평성대라고 본 적도 없다. 현실 정치에 참여치 않으면서, 끊임없이 헌책하고 임금을 만나서 임금과 나라의 나갈 방향을 제시했다. 다음의 시를 보자.

포석정鮑石亭
풍엽계림이개가 楓葉鷄林已改柯 단풍든 계림은 이미 나뭇가지 변했나니,
견훤불시멸신라 甄萱不是滅新羅 견훤이 신라를 멸망시킨 것 아니라네.
포정자소궁병벌 鮑亭自召宮兵伐 포석정이 스스로 궁궐에 적병의 침입 불렀나니,
도차군신무계하 到此君臣無計何 이에 이르도록 임금과 신하 어찌 계책 없었나?
(류진희, <남명의 한시>)

역사의 현장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를 깊이 반성케 하는 산 교육장이 된다. 역사상 한 나라가 망하는 과정은 먼저 그 내부의 방탕, 사치, 무능 등 자기 회멸灰滅로부터 시작해서 그 끝맺음을 외적이 해 줄 뿐이다. (김충렬, <시문을 통해 본 남명의 사상>)


조종명 / 남명진흥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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