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자연보호 단체 ‘입덕문 보승계’

산청시대 2022-03-16 (수) 00:41 2년전 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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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문정 

‘입덕문’ 글씨를 쓴 분에 관해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 <진양지>에는 ‘도구 이제신이 썼다’고 되어 있다.
나는 어느 날 환재 하유집 옹이 괴와 하대관(1698~1832)의 문집을 편간하기 위해, 그의 왕고王考 담헌 하우선(1894~1975)옹이 수집한 수고手稿를 보여 주는데, 그 글의 ‘입덕문조’入德門條에 ‘덕천서원, 경의당, 시정문, 세심정, 입덕문에 이르기까지 모두 나의 외선조 배참지공의 글씨다. 영산에 살았다.’(德川書院敬義堂時靜門 洗心亭至入德門 皆吾外先祖裵參知公筆也 居靈山故云, 덕천서원경의당시정문 세심정지입덕문 개오외선조배참지공필야 거영산고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았다(사진 참조).
그리고 여러 연구자의 글을 통해, 눌암 박지서(1754~1821)의 <도구대기>陶丘臺記에도 ‘처음에는 이제신이 썼고, 이것을 배대유가 다시 써서’ 오늘에 전하는 것을 알았다.
묵헌 이만운(1736~1820)의 <덕산동유기>德山洞遊記에서 ‘골짜기의 입구는 험한 낭떠러지이지만, 골짜기 안은 평평하면서도 넓다’(谷口??곡구외오 洞天平曠동천평광)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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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와집 입덕문조

이제신이 처음 쓰고, 배대유가 다시 쓴 ‘입덕문’
1960년(경자庚子) 4월에 삼장, 시천, 단성의 뜻있는 분들이 모여 ‘입덕문 보승계’入德門保勝契를 발기한다. 아마도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보호 단체’일 것이다. 전문 28조의 규약을 만들었는데, 그 제2조를 보면, ‘본계는 계원 상호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애림사상의 함양 및 선현 추모 정신의 앙양과 고적 보존의 취지하에, 입덕문을 중심으로 동서 오리(이천?천 2km) 구간의 덕천강 양안 일대 임야의 천연 치수를 보호하고, 풍치림을 육성하여 장래 지리산 관문의 경승지 조성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밝혔다. 그 사업으로는, 제4조에 1, 풍치림 조성을 위한 산림 보호 및 식수. 2, 고적 보존. 3, 어족 보호. 4, 유원지 조성. 5, 선현 추모, 정우亭宇 건립. 6, 경승지 조성에 필요한 사업으로 정해놓고 추진했다.

1960년 4월 삼장·시천·단성 사람 모여 창립
발기인은 하간(당산), 이호주(묵곡), 조욱환(사리) 등 19분이다.
초대 계장契長은 하간, 부계장은 이한룡(묘동), 이두기(사리), 강태수(대포). 총무는 조응상(사리)이다. 역대 계장을 보면, 하간에 이어 이두기, 이주범(자양), 정호영(구사), 권진경(강루), 이경규(천평), 조우제(대포), 정화석(외공), 허갑도(원리), 정규(사월), 이기상(남사), 손성모(사월), 강대성(입석), 정종인(대포), 하열희(백곡), 권영달(입석), 정태근(신안), 권민호(성내), 이전용(묵곡)등이다.
아울러 역대 총무는, 조응상(사리), 조규석(사리), 조성섭(사리), 조대환(사리), 조무환(사리), 류양우(천평), 조운환(사리), 조종호(대하), 조두환(대포), 조주섭(사리) 등이 수고했다.

특히 덕문정德門亭 건립은 ‘입덕문 보승계’ 창설 이후 제일 큰 숙원사업이라 할 수 있는데, 운정雲庭 이두기 추진위원장과 송암松庵 류양우 총무의 노고가 참으로 컸다. 운정은 당시 본손 측 방은 조온환과 필자를 포함해 여러분을 동원하고, 덕문정 모델을 찾아 영남 일대의 누정을 찾아다니면서 모델을 정하고 원대한 계획을 세워 마침내 이루었다. 당시 물심양면으로 적극 협조한 여러분들이 아니면 이 사업이 이루어졌겠는가? 운정 옹과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1993년 3월에 ‘덕문정 건립 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경향 각지로 모금에 착수, 많은 호응을 얻었다. 94년 4월 건축허가를 받고 2천만원의 군비도 지원을 받았다. 당시 계원 수는 874명이었으나, 향우와 군민 272명의 헌성금 1억2,700만원 등 모두 1억4,700만원으로 멋진 누정을 완공하고 1996년 5월 10일에 준공식 겸 덕문정 총회를 열었다.
‘덕문정 기문’德門亭記文은 성산인星山人 이헌주가, ‘덕문정 상량문’은 삭녕 최인찬이 찬撰했다. 천정에는 뇌룡도雷龍圖를 그렸다.
처음에는 삼장, 시천, 단성, 신안 등지의 뜻있는 주민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나, 산청 군내의 유지자들의 호응이 깊어 나날이 계원이 늘어 지금은 1천여명이 넘는다. 산청군 기관장과 국회의원도 고문 혹은 계원으로 참여하고 계의 운영에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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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문정 천정 뇌룡도

1996년 1억4,700만원 들여 덕문정 건립
최근에는 ‘인문학 기행’으로 많은 탐방객을 모집한 언론기관 등이 남명학 연구 교수의 해설로 유익한 답사를 하고 있다. 보승계 재력이 미약해 해마다 5월 10일 열리는 정기총회는 200명 정도 회원이 모여 점심 식사 준비도 힘들었는데, 산청양수발전소가 중식을 제공한다. 산청문화원의 국악과 악기연주 동호인이 참여해서 흥을 돋우고, 학자를 초청해 강의를 듣기도 한다. ‘두류한시회’에서는 시를 지어 읊음으로써 운치를 더하기도 한다.
몇 년전 산청군에서 입덕문 일대에 산책로를 설치했다. 덕문정~탁영대 구간에 방부목으로 데크를 설치했으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허물어지고 낡아 걸어 다니기가 위험한 상태다. 홍수를 막기 위해 근년에 하천을 정비할 계획이 있다 하니 앞으로 관리가 어떻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덕문정 벽에 걸려있는 ‘덕문정고성원운’德門亭告成原韻 시를 번역한다.

정이덕문공고성(亭以德門功告成) 덕문으로 이름한 정자가 완공되었으니,
유광금부환연명(幽光今復煥然明) 그윽한 풍광이 이제 다시 밝아졌네.
연운불개선천색(煙雲不改先天色) 연운煙雲은 옛날 모습 변함없고,
천석유함태고정(泉石惟含太古情) 천석泉石은 태고의 마음을 품고 있네.
거취작여사작록(去就綽餘辭爵祿) 출처出處는 너그러워 벼슬을 사양했고,
지순우아진심성(持循優雅盡心誠) 몸가짐은 우아하여 성심을 다하였네.
의여보승제장보(?與保勝諸章甫) 훌륭하구나, 보승계 여러 선비들이여,
추모고풍수궐성(追慕高風樹厥聲) 선생의 고풍 추모하여 그 명성 이루었네.

을해乙亥(1995) 중추仲秋 윤병문尹秉文
윤병문이 누군지 모른다. 아마도 운정 이두기 씨나 수헌 정태수 씨가 부탁해 받았으리라. ‘한국선비문화연구원’ 한문학자 양헌陽軒 이창호 씨가 이 시를 번역했다. 앞으로 이 정루亭樓에 수많은 차운 시次韻詩가 붙기를 바란다. 또 세월이 지나도 이 아름다운 뜻이 지속해서 계승되어 선량한 관리가 되어 나가기를 바란다.

조종명 남명진흥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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