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국동마을에 펼쳐진 조선 사대부들의 유토피아

산청시대 2022-08-19 (금) 10:50 1년전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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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암(明庵) 정식(鄭拭)과 무이구곡(武夷九曲)

주자학이 조선의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은 이래 당시 지식집단의 지향점이었던 주자가 무이산에 은거하여 경영한 무이구곡의 덕행과 그가 지은 ‘무이도가’(武夷櫂歌)는 조선의 수려한 산수 경계를 ‘구곡원림’으로 재조명하는 문화적 유행으로 이끌어 왔다.
성리학 중흥기인 16세기에 퇴계 이황의 ‘도산구곡’, 율곡 이이의 ‘고산 계곡’, 한강 정구의 ‘무흘구곡’ 등에 이어 명암(明庵) 정식(鄭拭: 1683∼1746)은 주자의 지조와 절개를 본받아 지리산에 ‘무이구곡’을 경영하며 구곡문화를 더욱 풍족하게 만들었다.

구곡산 세거지 ‘무이정사’‥1728년 건립

정식(鄭拭)의 자는 경보(敬甫), 호는 명암(明庵)으로 동지중추부사 대형(大亨)의 손자이며 주자에 대한 추앙은 남달랐다. 퇴계나 율곡 등은 세거지 인근의 산천을 무이산에 견주어 구곡(九曲)으로 설정하고, 다양한 형식의 ‘무이도가’(武夷櫂歌)를 남긴 데 반해, 명암은 구곡산 원리의 세거지를 ‘무이정사’(武夷精舍)라 하고, 인근의 계곡을 골라 바위에 이름을 새겨놓았다.
무이정사(武夷亭舍) 옛터는 와룡암에서 계곡을 끼고 비탈길로 올라가면 장대밭(시천면 원리 산 68번지/임야 34,512㎡)에 있었다. 명암 선생이 1728년 최초로 건립해 18년간이나 살았으며, 1746년 64세에 세상을 떠난 곳이다. 현재 국동에 있는 무이정사는 1933년 원래 자리가 아닌 국동마을에 중건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버리고 그 이후 다시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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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천대

-제1곡 수홍교(垂虹橋)
서신마을에 있는 관천대 바로 앞 다리가 수홍교 터다. 수홍교(垂虹橋)라면 ‘무지개다리’라고도 하는 홍예교를 말한다. 바로 옆 관천대와 덕천강이 어우러져 가히 제1곡이라 할 만하였을 것이다. 수홍교 각자는 명암 막내아들 상화의 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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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곡 옥녀봉(玉女峰)
시천면 원리 산 19번지에 있으며, 수홍교 계곡을 따라 20분 올라가면 조그마한 아름다운 산이다. 옥녀봉 각자는 명암 선생의 막내아들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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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곡 농월담(弄月潭)
옥녀봉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큰 반석 위에 연못처럼 형성된 아름다운 곳이다. 농월담에서 도솔암으로 향하여 계속 올라가면 도솔암교 다리를 건너게 된다. 이 다리 20m 못미처 도로 우측으로 드러누운 바위에 ‘명암 정식’ 각자가 있다. 이 각자는 명암의 막내아들 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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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곡 낙화담(落花潭)
도솔암교 다리 아래로 들어가서 조금 올라가면 글자 그대로 소폭(小瀑)에서 물이 꽃잎처럼 떨어지며, 아담한 담(潭) 가운데 바위에 명암 선생의 가운데 아들 상문이 새긴 ‘낙화담’ 각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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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곡 대은병(大隱屛)
낙화담에서 10분 거리 ‘도솔암’ 아래 건너편 다섯 굽이 계곡, 넓은 청돌 바위에 명제를 바꾸어 ‘난가암’(爛柯巖)이란 세 글자가 가느다란 획도 망가지지 않은 채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그러나 제4곡인 낙화담을 지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대은병’ 각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에 명암 선생이 ‘도암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나열한 9곡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던 ‘난가암’(爛柯巖)이 나타난다.
명암 선생이 주자의 ‘대은병’에서 따온 이름으로 제5곡을 명명한 이후 ‘대은병’ 시를 지어놓고 보니 문장에 들어있던 난가처가 신선놀음하기 좋은 곳에 더욱 그럴듯하여 ‘난가암’ 각자를 남긴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각자는 가운데 아들 상문의 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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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곡 광풍뢰(光風瀨)
제5곡 난가암을 지나고 나서 제6곡까지는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다. 광풍뢰란 ‘맑은 햇살과 함께 부는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는 여울’이란 뜻이다. 광풍뢰각자는 가운데 아들 상문의 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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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곡 제월대(霽月臺)
광풍뢰를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양쪽에서 내려오는 계곡이 합해지는 합수부에 너른 반석이 있고, 도솔암에서 올라오는 반듯한 등산로를 만나게 된다. 합수부 너른 반석이 제월대다.
광풍뢰 다음 제7곡에 제월대가 나오는 것은 ‘광풍제월’ 혹은 ‘제월광풍’이 한 쌍으로 “광풍제월(光風霽月)(비 온 뒤의 바람과 달이란 뜻으로 깨끗하고 맑은 마음)과도 같다”고 한데서 유래한다. 제월대 각자는 명암 선생 큰아들 상협의 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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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곡 고루암(鼓樓巖)
계곡 삼각 지점에서 10분 거리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자연석이 고루암이다.
등산로가 양쪽으로 갈라가는 제월대에서 구곡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좌측 등산로 계곡 쪽으로 각자를 찾을 수 있다. 제월대 각자는 큰아들 상협이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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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곡 와룡폭(臥龍瀑)과 연화대(蓮花臺)
고루암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용이 엎드려 서리고 누워있는 바위에서 쏟아지는 폭포를 이른다.
용담의 높이는 10m로 마지막 제9곡다운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와룡폭은 규모나 형상으로 지리산의 폭포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명품폭포다.
마치 하늘 중간에 떠 있는 듯 압도할 장관이 펼쳐지는 곳이다. 와룡폭 위에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비행선처럼 웅장하게 서 있는 자연석의 대가 있는데 바로 연화대이다.
와룡폭은 이 연화대가 있으므로 더욱 신비감을 자아낼 뿐 아니라, 와룡폭은 연화대에 올라 바라볼 때 제대로 볼 수 있다. 와룡폭 각자 명암 선생 큰아들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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