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의 알프스 산행기(4) 신이 빚은 거대한 조각품 같은 돌로미테 산군

산청시대 2022-10-20 (목) 21:00 1년전 897  

effe6f43f7f18a2e9ac5fd5ac909d944_1666267
세체다에서

7월 30일 돌로미테 트레킹을 떠나다.
몽블랑 산군에 눈이 많이 내렸다. 한여름에 눈이라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제네바 공항에서 자동차를 렌터한다. 왜냐하면 8월 6일 제네바 공항에 차를 반납하고 출국하면 편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밤 이탈리아 돌로미테 오르티세이까지 가야만 한다. 12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다.
샤모니에서 꾸르마에르 13km 몽블랑 터널이 꽉 막혔다. 트리앙을 지나 라포끌라즈 고개에서 점심을 먹는다. 동화에나 나올 법한 알프스 산길을 따라 구불구불 마흐티니에 다다랐다. 통행료는 벌었다 싶은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다시 산꼭대기를 올라 아오스타 터널을 넘어 밀라노를 향한다.

2000년 초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농협중앙회 EU사무소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방학이 되면 아내와 딸들을 데리고 렌터카를 빌려 유럽을 여행하곤 했다. 당시 네비게이션도 없이 왕 두꺼운 유럽 지도책 한 권에 의존해 이리저리 다녔던 시절이었다. 아내에게 지도책도 제대로 못 본다고 구박하고 길도 못 찾는다고 핀잔을 줬다. 지금 생각하면 참 미안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쓴웃음이 절로 난다. 앞으론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다.

밀라노-베로나-트렌트-볼차노-오르티세이! 돌로미테를 만나러 벌써 10시간을 달려왔다. 밤 10시 도착이다. 렌터카를 타고 가족들과 베니스까지 갔던 길이라 조금은 낯설지 않다. 온 포도밭엔 포도송이 매달리고 올리브나무는 후텁지근한 바람에 은빛 이파리를 날린다. 뙤약볕 아래 옥수수와 벼는 알알이 여문다.
돌로미테 오르티세이에 있는 B&B 숙소에 여장을 푼다. 추워서 모두 플리스 재킷이나 패딩을 입고 다닌다. 이곳도 몽블랑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별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7월 31일 돌로미테 트레킹 1일차
이탈리아 북부에는 알프스산맥 일부인 돌로미테 산맥이 있다. 이 산맥을 트레킹하기 위한 두 개의 기점이 있는데 하나는 서부 오르티세이, 하나는 동부 코르티나담페초다. 트레킹 코스의 길이는 자그마치 70km에 달한다.

돌로미테라는 지명은 돌로마이트라는 암석의 종류에서 왔다는 설과 암석 연구학자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돌로미테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지역은 5,500㎢에 달하는 면적과 석회암과 백운암으로 이루어진 침봉들이 거대한 산군을 이루고 있다. 3천m가 넘는 18개의 암봉마다 전설적인 산악인들의 눈물과 땀이 배어있다.

오르티세이는 해발고도 1,230m, 인구 5,500명의 산간 마을! 발 가르데나에는 오르티세이와 산타 크리스티나,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한 셀바 등 3개 마을이 있다. 겨울철에는 총연장 60km가 넘는 스키 슬로프를 갖춘 스키어들의 세상이지만, 여름철에는 알파인 메도우로 변신해 트레커와 마운틴 바이커들의 천국이 된다.

오늘은 서부 오르티세이 지역의 대표적인 데일리 트레킹코스인 세체다를 간다. 오르티세이 시내에서 에스컬레이트 타고 케이블카 스테이션에서 원웨이 티켓으로 2,518m 세체다를 오른다. 케이블카를 내리면 갑자기 말도 안 되는 풍경이 펼쳐진다. 보자마자 탄성이 나온다.

산장에서 아침을 먹고 야생화가 만발한 트레일을 따라 정상에 오른다.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멀리 싸소룽고의 웅장한 바위와 알페디시우스의 축구장 8천개 크기의 초원을 본다. 여러 갈래의 난이도가 제각각인 코스를 선택해 트레킹에 나선다. 2시간 30분의 하이킹을 마치고 숙소로 원점회귀 한다. 꿈같은 데이 트레킹을 마친다.

effe6f43f7f18a2e9ac5fd5ac909d944_1666267
​로카텔리 산장

8월 1일 돌로미테 트레킹 2일차
은하수 별빛과 잠이 들고 새소리에 잠을 깬다. B&B 숙소에서 토스트와 커피를 마시고 아침햇살을 데리고 동부 코르티나 담페초 아우론조 산장을 향한다. 오늘은 트레치메 트레킹을 떠나는 날이다.

깨끗하고 쾌적한 전원을 따라 동으로 동으로 차를 몬다. 울창한 산림과 넓고 푸른 초원 그리고 그림 같은 산악마을 집들! 그 뒤로 병풍처럼 둘러싼 뾰족하고 거대한 바위 봉우리들! 능선 곳곳마다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리프트와 곤돌라! 캠핑카들이 아침 기지개를 켠다. 군데군데 아름답고 편리한 산장들이 트래커들의 휴식을 책임진다. 산길이라 좁아 속도는 거의 30~50km 구불구불 루핀이 핀 산길을 도요타 청마는 달린다. 입이 떡떡 벌어진다. 신이 빚은 거대한 조각품이라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동화 같은 집들과 초원 스위스보다 더 아름답다.
돌로미테 상징이자 대표 트레킹 코스인 트레치메! 트레치메는 세 개의 봉우리라는 뜻이란다. 트레치메를 가운데 두고 아우론조 산장-라바레도 산장-로카텔리 산장-langalm 산장을 걷는 4시간의 트레킹이다. 이탈리아의 산장 관리는 이탈리아 산악협회에서 주관한다. 정말 철저하고 인간중심의 자연 친화적 관리라 훌륭하다.

10시 10분 담페초와 미수리나 호수를 지나 아우론조 산장 6km를 앞두고 꽉 막힌다. 대당 하루 30유로 주차료 징수 때문이다. 산장은 차와 트레커들로 인산인해 북새통이다. 라바레도 산장을 지나니 트레치메의 장엄하고 압도하는 얼굴이 나타난다. 가장 아름다운 산장 중의 하나인 로카델리 산장에서 샌드위치와 콜라 그리고 커피로 점심을 때운다. 거대한 자연에 비하면 인간은 한낱 미물에 불과한 것 같다.

가운데 봉우리의 이름은 GR.ZINNE GRANDE 2,999m! 바위의 높이만 600m가 넘는다고 한다. 하루에도 바위의 색깔이 몇 번씩 바뀐다고 한다. 트레치메 앞에서 ‘2023 산청 세계전통의학엑스포’의 성공을 기원해 본다. 꼴데메조 아래 2,283m에 자리 잡고 트레치메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langalm산장을 몇 번이고 돌아보며 아쉬운 걸음을 옮긴다.
Good Bye tre cime!!!


effe6f43f7f18a2e9ac5fd5ac909d944_1666267
트레치메를 배경으로

글쓴이 이창호(62) <본지> 편집위원은 단성면 사월리 배양마을 출신으로, 모교인 부산대학교 OB 산악부에 몸담은 전문 등반가입니다. 이 위원은 농협은행 수석부행장과 NH선물 대표를 지냈습니다.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정치
자치행정
선비학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