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인의 문화기행] 11월의 지리산 마을은 주황 구슬 엮는 손길로 바쁘다.

산청시대 2022-12-02 (금) 12:40 1년전 1177  

 

‘지리산 두리농원’ 이정둘 씨의 사는 이야기

 

d2da31f3bb3d86e072ab6aa638dfd74c_1669952
이정둘씨와 남편 

 

지리산 장당골 입구의 삼장면 대하마을, 11월 중순 무렵 오후 3시가 조금 지나며 해가 설핏 기울자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진다. 냉기가 얇은 옷 틈을 후비고 들어오니 몸이 저절로 떨리며 움츠러든다. 

‘지리산 두리농원’ 곶감 작업장에는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 준비를 하는 아들이 손을 놀리지 않고 감 깎는 작업을 이어간다. 

두리농원 주인 이정둘(55)씨는 얼마 전 SNS에 ‘우리 부모님들도 농사지어 자식들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시더니, 우리 부부도 그렇게 살아지누나’라고 글을 올렸다.

11월을 맞아 본격적으로 곶감 작업에 들어가는 굳은 의지를 담았다. 도시 사람들의 달콤한 한겨울 먹거리가 지리산 마을 사람들에게는 삶의 수단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d2da31f3bb3d86e072ab6aa638dfd74c_1669952

 

삼장면 대하마을서 태어나 2020년 귀향

 

이곳 대하마을은 이 씨의 어린 시절 추억이 살아있는 태어난 고향이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공부를 잘했던 그녀는 덕산중학교를 마치고 진주로 진학해 경상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한동안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았다고 했다. 그리고 결혼해 창원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맨주먹으로 뛰어든 대처의 생활은 결코 화려할 수가 없었습니다.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버티려고 발버둥을 치다 보니 몸과 마음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남편과 같이 창원에서 수학학원을 운영하던 그들에게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남편은 폐결핵, 이 씨는 갑상샘암이 림프샘에 전이되었다는 판정을 거의 동시에 받았다고 했다. 

 

암 판정받아 치유의 땅에서 활기 되찾아

 

“사람이 아프거나 힘들고 지칠 때는 고향과 어머니가 생각나는 것은 인지상정 아닌가요”

2020년 4월, 아들이 고3, 고2학년인데도 불구하고 큰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고향에는 80대 친정 부모님이 여전히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아프면 건강의 소중함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오기로 하며 원칙을 정했습니다. 부모님이 해오던 관행농법을 따르지 않고 ‘소비자 건강과 지구를 지키는 지속 가능한 농업’을 하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d2da31f3bb3d86e072ab6aa638dfd74c_1669952

 

‘지구를 지키는 지속 가능한 농업’ 결의

 

당시 6만 6천여㎡ 크기의 부모님 농장에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두릅과 음나무 순, 취나물, 고사리, 돌배 등이 자랐지만, 당장 소득과 직결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직은 아이들이 학업에 전념하기에 직접적인 소득 창출이 필요했다. 

산청서 돈 되는 농업 작목은 곶감, 딸기, 양봉이라는 말을 들었다. 딸기는 지역 여건상 재배하기가 어려웠으나 곶감 생산은 큰 준비 없이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했다.

 

소득 작목 찾은 끝에 곶감·양봉 선택 

 

시골 출신이지만 농사는 전혀 모르는 초보인지라 산청군 귀농·귀촌 연합회를 찾았다. 그곳에서 오보환 회장을 만나 양봉 교육을 받고 30통을 입식해 사양을 시작했다. 2년여 노력 끝에 지금은 200통으로 늘렸으며, 해마다 4~5월이면 힘이 들어도 하동과 경북 예천 등지로 이동하며 아카시아와 때죽, 밤, 야생화 꿀을 생산하고 있다. 

이 씨는 소비자 불신을 해소하고자 한국양봉협회에서 실시하는 꿀 검사제도인 벌꿀 등급제를 자진해서 받았다. 벌꿀 등급제는 검사 기간이 7주 정도 소요되며, 그 외에도 검사비와 등급 필증 작업 등이 까다로워 대부분 양봉농가는 꺼리는 작업이다. 또 영양소 파괴가 있는 단시간 고온 농축을 지양하고, 비록 온종일 걸리지만 저온 농축으로 벌꿀을 채취하고 있다고 한다.

 

“사회적 가치 실현하는 농장 만들 것”

 

“엄마, 아빠가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니 아이들이 빨리 철이 들었는지 스스로 갈 길을 잘 찾아가고 있어 대견하죠. 이제 부부 둘만 건강하면 되니까, 욕심부릴 필요가 없어 올해는 곶감 건조막도 지난해 6동에서 절반으로 줄였어요. 앞으로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농장으로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이정둘 씨의 ‘활짝 웃는 얼굴’은 이제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d2da31f3bb3d86e072ab6aa638dfd74c_1669952
 

 

민영인 문화부장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정치
자치행정
선비학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