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향교에서 강의한 <여김숙부>與金肅夫 편지 그날의 강의 내용을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이야기의 내용은 ‘김숙부에 주다’라고 하는 편지의 전문이다. 편지는 편지를 써서 보내는 사람이 받는 사람에게 꼭 할 말이 있어서 보내게 되므로, 그분의 깊은 마음 뜻이 담겨 있다. 김숙부에게 보낸 편지는 <남명집>에 여러 편이 있지만 그중에 이 편지를 그날 강의의 내용으로 삼고 싶었다. 동강은 1562년에 선생에게 집지執贄했고 1564년에 선생의 외손서가 되었다. 사제 간에 자주 만나 가르침을 받았고 편지 왕래도 잦아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선생이 차고 있던 성성자惺惺子를 끌러서 주었으니 사랑함이 얼마나 극진했는지 알 수 있다. 선생은 늘 말씀하기로 귀로 들어서 입으로 달달 외우기만 하는 학문은 ‘구이지학’口耳之學(귀와 입에 발린 학문)이요, ‘앵무지학’鸚鵡之學(앵무새처럼 아무런 감정 없이 외우는 학문)이라고 했다. 학문의 효용은 잘 외워서 이론에 밝은 것도 중요하지만 이론을 체득하여 그것을 실생활에 실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체득하여 실천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또한 ‘…대장부의 행동거지는 무겁기가 산악 같아서 만 길이나 깎아선 듯하다가 때가 오면 움직여야 바야흐로 허다한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차고 있던 성성자惺惺子를 끌러주면서, ‘이 물건은 맑은소리로 사람을 깨우쳐줄 줄 안다. 내 귀중한 보배로서 자네에게 주는 것이니 자네가 능히 이것을 지니겠는가?’ 하자, 동강이 묻기를, ‘이는 옛사람들이 옥을 차는 뜻이 아니었습니까?’라고 하니 선생이 말하길, ‘실로 그렇다. 그러나 이것은 의미가 더욱 절실하니 이연평李延平 이동李?(1093~1163, 주자의 스승)도 일찍이 찼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뇌천’雷天이란 두 글자를 써주면서 ‘대장’大壯의 마음을 가지도록 하였다. 요컨대 방울의 맑은소리를 듣고, 흐트러지는 마음을 불러 깨우치고 자신을 반성하여 매사를 경계하도록 하였다. 뇌천은 주역 대장괘의 뜻을 취한 것으로 성찰하고 극기하는 공부를 부지런히 힘쓸 것을 당부한 것이다.’ (<남명원보>, 2002. 6. 이상원 ‘산천재에 이는 대바람 소리’) 선조가 경연經筵에서 동강에게 묻기를, “그대는 일찍이 조식의 문하에서 수업을 받았으니 반드시 들은 바가 있을 것이고, 또한 그대의 학문하는 것이 독실하니 그대가 한 공부는 어떤 것이냐?” 이에 대답하기를 “신은 실로 공부를 잘하지 못하였습니다. 조모曺某(조식)의 가르친 바를 말하자면 흩어지는 마음을 모우는 것(구방심求放心)을 근본으로 삼고, 또 경敬을 주장함으로써 흩어진 마음을 찾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이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독립운동가요, 성균관과 성균관대학교 설립자인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1879~1962)은 동강의 13대 종손이다. 그가 벽옹?翁이라 자호하는 이유는 일경의 고문으로 양발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덕천서원에 첨알瞻謁하러 왔는데 지게에 지워서 왔더라고 할아버지께 들은 기억이 있다. 그의 스승 면우 곽종석(1846~1919)이 <파리장서>를 지어 중국으로 보낼 때 일화가 있다. “이 글을 모두 외워라, 그래도 혹시 잊을 수가 있으니 이 종이를 행으로 잘라 노를 비벼 신을 삼아 가면 일경의 검문을 피해서 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는 것과, 과부가 된 둘째 며느리 밀양 손씨가 옥바라지하는 모습이 애처로워 “너는 좋은 자리를 찾아 개가하거라.”하였더니, 손씨의 대답이 “아버님이 저를 그렇게 가르쳤습니까? 절대로 안 될 말씀입니다.”했다고 한다. 그 자부는 외롭게 100세를 살다가 2016년에 별세했다. 그리고 집안사람에 중재 김황(1896~1978)이라는 분은 산청군 신등면 내당內塘 마을에 살았는데 흔히 세상 사람들이 최후의 선비라 했다. 수많은 사람이 그를 찾아 배웠고, 특히 대학교수들이 많이 찾아왔었다. 그의 이름자 황榥을 보면 ‘나무 목木과 밝을 황晃’을 합한 글자이다. 목木 자는 남명 선생의 이름자 식植에서 따왔고, 황晃 자는 퇴계 선생의 이름자 황滉 자에서 따왔다 한다. 곧 남명 퇴계를 모두 배워 닮고자 하는 뜻이라 하니 강렬한 두 대현에 대한 학구의 의지를 알 수 있다. 조종명 남명진흥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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