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이야기] 국동마을 이야기

산청시대 2023-01-12 (목) 02:05 1년전 415  

500여 년 전 명암 정식이라는 유학자는
 지리산 구곡산 자락에서 무이산 아홉 구비를 흘려내려
 굽이마다 절경을 이루는 무이계곡을 발견하고,
 주자의 주진촌을 조선 땅에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의 일가를 모두 이끌고 국동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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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곡산과 국동마을

땅의 이름이나 산의 이름은 숨겨지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면서 이 땅에 남아 있다.

산청군 시천면 원리 국동마을.
구곡산 옥류는 구곡을 타고 서쪽에서 흘러 내려와, 동쪽 덕천강 바로 위 시천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마지막 터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두류산 살천리 국골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이 마을은 수량이 풍부하고, 물결 빠르기가 마치 쏜 화살 같아 빨라 실천이라 하며, 국화꽃이 만개했던 아름다운 마을이다

무이산 무이구곡이라 불리며 명암 정식 선생이 주자의 이상촌을 구현하려 한 마을.
500여 년 전 명암 정식이라는 유학자는 지리산 구곡산 자락에서 무이산 아홉 구비를 흘려내려 굽이마다 절경을 이루는 무이계곡을 발견하고, 마침내 주자의 주진촌을 조선 땅에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의 일가를 모두 이끌고 국동으로 들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산중에서 풀 베고 나무하던 구십 세 된 노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오래전 이 땅에 이미 계셨던 선각자가 무이산을 주산으로, 안산을 수양산으로, 무이구곡을 이루셨고, 수홍교와 옥녀봉 등 구곡의 지명이 구전되어 오래전부터 내려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명암 정식 선생은 이때 비로소 이곳이 무이구곡임을 확실히 깨닫고 이렇게 생각했다.
‘하늘이 만들어 땅이 간직해두고 신이 아끼고 귀신이 감추었다가 나에게 주셨구나. 나는 일찍이 해동의 명승지를 두루 유람해 보았지만, 여기에 비교될 만한 곳은 없었다. 지리산은 쌍계가 뛰어나고 금강산은 만폭동이 기이하지만, 과연 무이산의 무이구곡과 비교될 만한 곳은 없었다. 나는 분명 이 산수가 주자의 무이구곡과 분명히 같은 것을 확신한다.’

그래서 수십 꾸미의 자금을 들여 석공으로 하여금 각각의 돌 표면에 구곡의 이름을 새겼다.
제1곡은 수홍교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무지개다리가 구곡의 관문으로 그 아름다움이 수려하고, 비치는 계곡수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제2곡은 옥녀봉으로 아름다운 봉우리에 구름과 담쟁이가 어우러져 계곡수에 비추고 있다. 제3곡은 농월담으로 큰 반석 위에 연못처럼 형성된 곳이며, 제4곡은 낙화담으로 소폭에서 물이 꽃잎처럼 떨어지고 있으며, 제5곡은 난가암으로 신선놀이 하기 좋은 곳이며, 제6곡은 광풍뢰로 맑은 햇살과 함께 부는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는 여울이며, 제7곡은 제월대로 비 온 뒤 바람과 달을 의미하며, 제8곡은 고루암으로 커다란 북을 간직한 누대의 모습이며, 제9곡은 와룡대로 지리산 명품 폭포 위로 웅장한 자연석이 펼쳐진 곳으로 구곡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500여 년 전 명암 정식 선생의 숨결이 그대로 이어져 아직도 그때의 바위 표면의 글씨가 그대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비록 세월의 풍상에 시달려 많이 손상된 모습이지만 그가 살던 무이정사와 더불어 이 마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옛 조선의 기개 높은 선비의 혜안과 주자의 이상이 합쳐져 이루어졌던 이 땅
지리산 구곡산의 정기와 이 땅에 촌부들이 땀 흘리며 숨 쉬고 살았던 이 땅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간직해두고 신이 아끼고 귀신이 감추어 두었던 이 땅
바로 국동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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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정사 전경

성준제 <산청시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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