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열 교수의 능력을 이해하고 잘 융합한 조옥환 옹

산청시대 2023-01-25 (수) 15:43 1년전 552  

김 교수가 처음 왔을 때의 소감을 술회한 글을 인용했다. 이때의 각오를 오언시에 담아서 조의생 옹의 손에 쥐여 드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다음 날은 소천서당小川書堂에서 한 20명의 후손들이 모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필자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휘호를 한 장씩 써주었다. 나는 ‘충효유풍’忠孝遺風이라는 글씨를 한 장 받았다. 

왜 하필 충효일까? 충효 말고 더 큰 덕목이 있을까? 초면에 충효를 강조한 기억이 남는다. 그날로 첫 방문을 마치고 조영기 씨의 차를 타고 서울로 떠났다.

 

그 이후로 김 교수는 남명학연구원 원장을 맡아 왔고, 매년 남명 선비문화축제(대아중고등학교 박종한 교장과 삼현여자중고교 최재호 교장이 주도하여 경남 사립 중고등학교가 주관하는 ‘남명 선생 탄신 추모제’ 줄여서 ‘남명제’라는 행사를 추진해 오다가 2001년 탄신 500주년 행사 때부터 ‘남명 선비문화축제’로 행사의 이름을 고쳤다.)와 ‘학술대회’, 기타 각종 행사 때는 내려와서 참석했다. 

 

한번은 남명제 행사하는 밤 시간, 약간의 빗방울이 떨어졌다. 그냥 무심히 빗방울을 맞으며 여러 가지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데 “우산 안 씌워주고 뭐하네”하는 조옥환 씨의 말씀에 소스라쳐 보니 김 교수도 비를 맞고 있었다. 조옥환 씨의 김 교수와 귀빈에 대한 배려가 이와 같았다.

임의단체로서의 ‘남명학연구원’, 그 사단법인화, <남명학 연구논총> 발행, ‘이달의 문화 인물’ 지정, 초등학교 <읽기> 교과서 등재, 여러 우여곡절 끝에 1983년 1월 23일 사적 305호로, 산천재, 남명 선생 묘역, 여재실, 덕천서원 일대가 지정되었다. 이 모두가 김 교수와 조옥환 옹의 철석같은 협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오늘(2023.1.2) 필자는 빈농貧農 겸 노농老農으로 곶감 접는 일을 하고 있는데 조옥환 대부의 호출이 왔다. 11시까지 회사로 나오라는 명령이다. 곶감 작업 중 다친 내자를 의원에 데리고 가서 빨리 치료를 마치고, 진주로 달려갔다. 

 

진주교육대학교의 남명교육연구재단에 기금을 추가해 내려고 하는데 같이 가자는 것이다. 현재 기금은 조옥환 대부가 낸 돈 1억원과 대학에서 보탠 돈 5천만원 해서 1억5천만원으로 그 이자로 사업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이에 지난번 이사회의 때 유길한 총장의 간절한 부탁도 있었지만, 대부님의 생각이 2억원 정도는 돼야 대학 자체 자금을 조금 보태면 그런대로 자체 사업을 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대학 본부 건물의 입구에 들어가니 여러분들이 입구에서부터 마중을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총장 기획처장 등과 환담한다는 것이 앞으로의 사업 추진 방향, 지금은 김락진 교수가 있지만 몇 년 뒤 김 교수가 퇴직하고 나면 후계 학자가 있어야 한다는 걱정을 하셨다. 

 

그리고는 교육대학교에 보낸 ‘2023년도 남명 사상 교육 프로그램 계획서’ 안을 작성해 보냈다. 

그 안을 보면, 가) 목표 및 필요성. 나) 2023년 세부 추진계획 1) 신입생을 위한 남명 사상 인식 제고 프로그램, 2) 남명 사상 특강, 3) 남명 선생의 경의 사상 체험 프로그램, 4) 남명 사상에 관한 유튜브 동영상 제작 대회, 5) 초등학생 교육 프로그램 개발. 이라는 계획서를 만들어 기부한 돈을 효력 있게 쓰도록 독려했다. 

 

이처럼 이 어른은 남명 선생 사업과 종중 일은 스스로 생각해서 해야겠다는 결심이 서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서 성취하고야 만다. 여러 어렵고 힘들지만 해야 할 일은 꼭 이루고야 마는 그야말로 물심양면의 정성 때문에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 지난 가을 어느 날 호출을 만났는데 용산리 의령공 산소로 오라는 것이다. 묘소까지 차가 오를 수 있게 길을 내고 상석과 낡은 묘갈까지 갈아 세운 것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칠원공, 만호공의 산소도 깨끗이 정비했다.

 

이 어른의 연세가 계묘년 설을 쇠면 아흔둘이 된다. 자서전과 공덕비 건립도 논의되고 있다. 혹자는 “살아 계신 데 왼 공덕비”냐 하지만 벌써 필자가 박병련 원장에게 부탁해서 비문도 받아놨다. 계묘년 정월 대종회 때에는 본격적인 종론의 결정을 보아 추진될 것을 믿는다. 

백 세를 바라보는 노장 어른, 아직도 기억력, 추진력, 등은 아홉 살이 적은 필자보다 훨씬 정정하시다. 사람의 수명을 누가 기약할 수 있겠는가? 어쨌든 이 어른을 충분히 기념하고 송덕해야 한다.

김충렬 원장과 권순찬 이사장도 찬양하는 비를 세워 우리 조문曺門과 식자들이 길이 기억하고 송덕해야 한다고 늘 말씀했다. 남명 후손인 우리가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이다.

 

김충렬 교수는 앞에서 인용한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 필자는 중국에서 열리는 학술회의에 참석차 국내에 없었는데 조옥환 사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일을 추진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이 경남도와의 관계인데, 경남도지사도 적극 거도적인 사업으로 정했음에도 공무원들이 남명 선생에 대해 잘 몰라 잘 움직이지 않으니, 도청에 가서 공무원을 상대로 한 강연을 해 주어야겠다는 것이었다. 조옥환 사장의 말이라면 두말하지 않고 따랐으니 거절할 수가 없어 중국 여행을 중단하고 귀국하여 창원 도청에 가서 강연을 했다. 그랬더니 공무원들도 남명 선생을 경남의 자존심으로 내걸어 자기일 인양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명 선생 탄신 500주년 행사는 남명학연구원 뿐만 아니라 경상남도를 비롯해서 산청군, 경남의 여러 단체가 모두 힘과 정성을 합쳐 추진하는 것이었으므로… 마음이 흐뭇하였다’ (<전게서> p50)

 

그리고는 원장을 사임하기로 합의한 경위를 설명했다.

‘… 그리하여 우리 둘은 30년간 고락을 우정에 한 점 그늘도 없이 환하게 가슴을 열었다.… 필자와 조옥환 사장과의 만남과 헤어짐은 서로가 합심하여 이룬 일이 있으므로 영원히 발자취가 함께 남을 것이다. 아름다운 발자취가……’ 이렇게 술회했다. 

 

김충열 교수의 정성도 지극했지만, 그의 능력을 이해하고 잘 융합한 조옥환 대부의 피나는 정성은 잊을 수 없다. 대부분의 유림들은 이야기한다. 어떤 사업가가 사업을 해서 이룬 과실을 송두리째 위선 사업에 투자하겠는가? 그 단성丹誠과 적공積功은 그 어떤 사람이 폄하하려 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다음과 같이 시를 짓는다.

 

찬 경재종로숭조상문讚敬齋宗老崇祖尙門

족로성장조묘동族老成長祖廟東 족로께서는 선자 사당의 동쪽에서 나고 자랐는데,

자소영오진강동自少穎悟晉康同 어려서부터 영오하여 진나라 손강孫康과 같았다.

관시란세신초가冠時亂世薪樵賈 청년 시절엔 난세라 나무 팔아 장사했으나,

급장평방거업공及壯平邦巨業攻 장년이 되어서는 나라가 평온하여 큰 사업을 다스렸다.

덕복영현무진적德復英賢無盡績 덕암德庵 복암復菴 영현도 다하지 못한 업적을,

경재의업지성공敬齋懿業至誠功 경재공의 아름다운 사업 지성으로 공 세웠네.

소승계후전형립紹承繼後典型立 받들어 계승하고 이어 나갈 전형을 세웠으니,

불식함원효불궁不息涵源效不窮 쉬지 말고 근원을 함양하여 본받아 다함 없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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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조순 전 부총리와 환담하는 조옥환 이사장(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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