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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한방항노화 산업단지 전경​경남도 기업투자촉진지구 신규 지정‥도내 21번째경상남도(도지사 김경수)가 산청군 금서면 평촌리 일원에 조성된 ‘산청 한방 항노화 일반산업단지’를 기업투자촉진지구로 신규 지정했다고 밝혔다. 산청 산단은 2017년 함양 일반산업단지, 거창 승강기 전문농공단지의 기업투자촉진지구 지정 이후 도내 21번째 지정이다.‘산청 한방 항노화 일반산업단지’는 경상남도 투자유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난 4월 1일 기업투자촉진지구로 지정 공고됐다.기업투자촉진지구는 분양실적이 70% 이하이거나 분양 가능 면적이 최소 3만3…
‘산해정 앞뜰 만개한 매화를 화담에게 보내고 싶다’​남명과 화담의 우정과 시  김해 ‘남명 정신문화 연구회’에서 초청이 왔다. 남명 선생에 관한 좋은 이야기를 해 달라는 것이다. 고맙고 황송한 일이다. 선생의 후손이기는 하지만, 귀한 활동을 하시는 타관 사람들께 무슨 이야기를 하겠는가? 시간 여유가 있어 함허정涵虛亭 옛터와 봉황대鳳凰臺를 둘러보았다. ‘봉황대 공원’은 가야 고도의 공원답게 잘 가꾸어져 있고, 황세 장군과 여의 낭자의 애달픈 전설이 서려 있다. 함허정은 연산군 4년(1498) 김해 부사 최윤신이 지었…
산해정 있던 자리에 들어선 신산서원(김해시 블로그)​김해는 산해정山海亭과 신산서원新山書院이 있다. 임란 때 불탄 것을 다시 세우고 대대로 김해 유림들이 관리해 오다가 조선 말기에 훼철의 비운을 맞았다. 산해정은 복원되었으나 신산서원이 복원되지 못해 자손은 물론, 김해 유림의 숙원 사업이었다. 1990년부터 신산서원 복원을 위한 대화가 김해 유림, 남명과 신송계 선생의 후손 간에 깊이 진행되었다. 산해정을 일부 정비하고 뒤편에 사당을 신축하여 신산서원을 만들자는 것이다. 1992년 1월 28일(음력 신미 12월 24일) 11시 김해시…
‘애민정신’ 펼친 가락국 마지막 구형왕 추모 ​ ​​27일 금서면 덕양전서‥산청 종친 등 100명 참석 초헌관 김상곤·아헌관 김기수·종헌관 김삼수 분향종묘 제례악 연주 속에 구형대왕 성덕 기리며 추모 가락국 제10대 양왕과 왕비를 추모하는 제례인 덕양전 춘향대제가 지난달 27일 산청군 금서면 덕양전에서 엄숙하게 봉행됐다.올해 춘향대제는 지난해처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대폭 축소 진행했으며, 산청 거주 종친 80여명과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이날 제례의 초헌관은 김상곤 전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 …
2023 산청엑스포 주행사장인 동의보감촌 전경  대외경제정책연, 동의보감촌서 착수보고회·현장방문‘산청 엑스포’ 개최 당위성·국제행사 타당성 등 강조​산청군과 경남도가 추진 중인 ‘2023 산청 세계전통의약 항노화 엑스포’의 국제행사 승인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타당성 조사용역이 시작됐다. 22일 산청군은 기획재정부가 의뢰한 ‘2023 산청 항노화 엑스포’ 국제행사 타당성 조사 연구용역을 위해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산청을 찾아 착수보고회와 함께 현장방문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국제행사 타당성 조사 위해 기재부 의뢰착수보고…
‘선생님이 오시니 봄이 오는 것 같네’덕계 오건과 스승 남명 조식​​서계서원 전경 / 사진 김종신​오늘은 산청의 큰 제자 덕계 오건 선생과 그의 스승 남명 선생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진주 쪽에서 산청 읍내로 들어가는 어구에 꽃봉산이 있다. 그 옆으로 4차선 국도가 시원하게 뚫려 있고 약간 비스듬한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를 ‘살고개’(쌀고개, 씰고개. 삵고개)라 한다. 막 고개를 넘으면서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큰 소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는 곳에 묘소가 보이고 그 옆에 기와집들이 보인다. 이곳이 지금 이야기하려 하는…
덕계 선생은 효성이 지극하여 11세에 부친상을 당한 이후 다섯 번을 상을 당했다. 탈상 후에 결혼하고, 남명 선생을 찾아 집지했다. 대과에 급제하고 54세에 별세할 때까지 벼슬길을 들락거릴 때 수시로 남명 선생을 찾아뵈었다. 그런 중에도 안의安義의 어느 곳에 우거할 생각을 했기도 했던 것 같고, 사제 간에 의론한 바가 있었을 것이다. 남명집에 이런 편지가 있다.‘지난봄에 안음安陰으로 찾아가 터를 잡은 곳의 시내 앞을 지난 적이 있는데, 터가 좋지 못해 깃들어 살기에는 부족하다고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위아래로 인적이 끊어지고, 농…
“올바른 역사 인식으로 ‘혼몽 역사’ 버리고 ‘정각 역사’ 창조하자”​ ​경남(경상우도)의 역사적 줄기 세워 역사적 사건 개요와 의의를 서술“선대서 후대까지 전승된 경남 사람 행동 패턴은 ‘행의문화’(行義文化)”‘단성소’와 제자 육성 등 남명이 현대 우리에게 주는 교훈 등을 논의 김영기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가 <남명 조식과의 대화-경남의 역사적 이해>(대영문화사, 426쪽)를 출간했다. 이 책은 경남(경상우도)의 역사적 줄기를 세워 역사적 사건의 개요와 의의를 서술하고, 이러한 결과 현상에 상관된 영향…
단성면 ‘한국 쏘가리 김진규 연구소’ 출하지리산 자락 청장 1급 수가 흐르는 쏘가리양식장에서 민물장어를 양식하고 있다.화제의 양식장은 ‘한국쏘가리 김진규연구소’(대표 김진규, 산청군 단성면 덕천로 835-20)양식장은 지리산에서 발원한 맑고 깨끗한 수질을 자랑하는 덕천강이 지나고 있으며, 쏘가리, 은어가 서식하면서 전국 낚시 마니아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뱀장어는 회유성 어류로, 남해 앞바다에서 산란한 치어가 사천만을 따라 덕천강으로 올라와야 하지만, 진양호 댐에 가로막혀 왕래가 끊어진 지 오래다.덕천강에 민물장어가 팔뚝만 한…
산 보고 물 보고 사람도 보고​청학의 자취를 찾아서​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제야 <유두류록>(遊頭流錄 두류산을 유람한 기록) 코스를 그 일부나마 답사하는 기회를 얻었다. 어쩌면 이제라도 청학이 상징하는 바 진실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꿈꿀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선 것 같아 기쁘고 영광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2003년 4월 12일 오후 봉곡동의 연구원 세미나실에 들어서니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었다. 토론을 마치고 몇 대의 승용차에 분승하여 하동으로 떠났다.우리는 진주를 떠난 지 채 한 시간이 안 되어 땅거미 속에 정지한 …
불일폭포(하동군 누리집)​문득 중천 선생이 “누가 이번 답사기를 써보지” 한다. 내가 설석규 선생을 보고 “설 선생은 전에 와보신 적도 있고 연구하신 바가 깊으니, 적격입니다”하였더니 끝내 사양한다. 중천 선생이 “본 손인 조 선생이 써보시오” 하므로, 얼떨결에 “예, 그렇게 해보지요”하고 대답해버렸다. 이 무슨 실수란 말인가? 마음속의 욕심이 저절로 울어 나왔던가! 재주는 요량 않고 경솔한 결정을 해버렸다. 두 달을 머릿속에 구름 낀 것처럼 지내다가 양 국장의 독촉을 받고 밤을 새워 이 글을 썼으니, 행인가 불행인가?이야기하다가 …
남명이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은 이유 밝힌 <엄광론>  출처(出處)​출처, 출은 ‘나간다’는 뜻이고, 처는 ‘들어앉아 있다’는 뜻이다. 내가 하급 공무원에 있었던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는 ‘잘살아 보세’를 기치로 ‘새마을 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던 시절이었다. 식량 증산이 제일 급했던 시절이었다. ‘미동법 480Ⅱ’ 소위 ‘잉여 농산물’을 원조받아서 주린 배를 달래야 했던 시절, 배불리 밥 먹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다. ‘통일벼’라는 획기적인 증수 벼 품종을 강제로 보급하던 시기였다. 농민들…
활짝 핀 산천재의 남명매​남명의 사후 벼슬을 올리고, 시호를 내리기 위해서 임금의 지시로 ‘행록’(行錄)을 지어 올리게 했는데, 선생의 제자 중에 배신(裵紳 1520~1573)이 지었다. 그중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어떤 사람이 남명에게 ‘당신은 엄광과 비교해,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느냐?’라고 하자, 남명은 ‘아! 자릉의 기절氣節을 내가 어찌 따라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엄자릉은 나와 도를 함께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이 세상을 잊지 못한 자로, 공자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최석기 <상계서>)…
‘임금 산소는 태조왕릉, 민간 산소는 남명 묘소가 제일’ 남명 묘소​지뢰음(地雷吟)오늘은 이 시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선생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시다. 제목이 어렵다. ‘남명학 연구소’ 번역본에는 ‘지뢰음’의 번역을 ‘복괘를 두고 읊다’라고 번역했다. 더 어렵다. 우선 번역문부터 보자.地雷吟(지뢰음)易象分明見地雷(역상분명견지뇌)  人心何昧善端開(인심하매선단개)  祇應萌蘖如山木(기응맹얼여산목) 莫遣牛羊日日來(막견우양일일래)역의 현상이 분명하게 ‘지뢰괘’에 나타나는데,사람 마음속 착한 실마리의 열림을 어…
​​1960년대 말경, 어느 대종회 날(대종회는 매년 정월 초닷새가 정일이다.)이었다. 어떤 종인 한 분이 고함을 질렀다. “아무개 네 이놈 경의검 어따 팔아 묵었네?” 그 말을 들은 당시 내임 지냈던 분이 마루 끝에 쪼그려 앉아서 작은 소리로 “그만 내가 죽어야지”라고 혼자 말처럼 푸념하는 말을 똑똑히 들은 기억이 있다. 그분이 내임을 지내신 기간을 경임록(經任錄)을 상고해 보았더니, 1963년부터 1968년까지였다. 따라서 경의검의 분실 시기는 그 기간 어느 해이었을 것이다. 내가 본 것도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덕천서원 숭덕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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