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계 뿌리 산청, 단성에서 국악 진흥운동 출발

산청시대 2018-07-30 (월) 16:37 4년전 2885  

최종실 교수, 기산 선생 현창사업 추진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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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근 군수와 환담하는 최종실 교수


“국악발전 계기 만든 선생의 정신 계승 중요”

업적 기리는 추모비 건립, 제자 100여명 나서

“산청은 국악진흥운동 출발점이 될 것” 전망

 

기산 박헌봉 선생 현창사업과 국악진흥을 위한 사업이 선생이 태어난 단성면 남사마을을 중심으로 국내외 국악계 제자들에 의해 새롭게 추진될 계획이다.

선생의 제자인 최종실 중앙대 교수는 6일 이재근 산청군수를 만나 이런 계획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협의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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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 박헌봉 생가 

 

기산 선생이 태어난 산청은 국악계의 본향

 

최 교수는 “기산 선생이 작사한 국악예술학교 교가 가운데 ‘고운 산, 맑은 물’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선생이 고향 산청을 생각한 것”이라며 “기산 선생은 고향의 향수를 국악 노래에 담아 뿌리를 찾으려 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 교수는 “기산 선생의 뿌리가 우리 국악인의 뿌리이고, 따라서 산청은 국악계의 본향이 된다”고 전제하면서 “새로운 국악 진흥운동을 산청에서 펼쳐 전국은 물론 세계로 뻗어나가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최 교수는 “국악발전의 계기를 만든 선생의 정신을 계승 발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선생님 업적을 기리는 추모비 건립을 위해 100여명 후원자들이 나서 모금에 참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산청 최초로 국립전통예술학교에 입학한 강유 양과 김난희 양 등도 열성적으로 지도하고 있으며, 국악계의 샛별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기산 선생은 우리 민족음악을 지키신 분”

 

최 교수는 2013년 문을 연 기산 생가와 기산국악당 건립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최 교수는 기산 박헌봉 선생에 대해 “국악계에 큰 족적을 남긴 분으로 일제가 말살하려한 우리 민족음악을 지키신 분”이라고 정의했다.

또 “기산 선생은 해방 이후 국악계 장르를 다시 살리는 방안을 찾다가 ‘인재양성만이 해결방안’이라며 국악예술학교를 설립했으며, 학교 설립 60년 역사 속에 1만7천여명의 국악인을 배출해 국악 발전의 큰 원동력 역할을 하게 했다”고 소회했다.

 

남명·삼우당·면우·성철 아우르는 정신문화 확산

 

이재근 산청군수는 이 자리에서 “산청은 문화관광 중에서도 정신문화와 관련한 관광이 결실을 맺을 때”라며 “남명 조식 선생과 면우 곽종석 선생, 삼우당 문익점 선생을 위시로 성철 스님과 기산 선생까지 이분들의 삶과 정신을 조명하는 사업을 차근차근 확산시켜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군수는 “기산 선생 제자들의 결의에 찬 모습에서 기산 현창사업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밝히고 “이번 사업은 외국에 거주하는 원로 국악인들도 참여하는 큰 규모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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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국악당

 

 

상모놀음·소고춤 달인 최종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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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수 등과 함께 78년 ‘사물놀이’ 첫 시작

네 살 때 ‘상모’돌리며 ‘삼천포농악단’ 입단 

중앙대서 후학 양성‥서울예술단 감독 역임


최종실(64) 중앙대 국악대학 타악과 교수는 상모놀음과 소고춤의 달인이자 ‘사물놀이’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고향이 삼천포인 최 교수는 네 살 때인 1957년 삼천포농악계(현 삼천포농악단) 계장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삼천포농악단에 입단해 상모를 돌리면서 ‘신동’이라고 알려지게 됐다.

그가 태어난 삼천포 송포동은 1966년 중요무형문화재 11호로 지정된 진주삼천포 농악(당시 농악12차) 주류인 송포농악 터전이었다. 아버지(작고)는 벅구(소고)잽이들 우두머리 수벅구(상벅구)이자 꼭두쇠로 이름을 날렸다. 맏형 최포돌(작고)은 송포동 옆 중림동 농악단에서 상쇠를 맡고 있었다. 바로 위의 형 최종석은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 전수조교로 있다. 


최 교수는 기산 선생이 설립한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와 중앙대학교 한국음악과를 나와 국립무용단과 서울시립무용단을 거쳐 김덕수 사물놀이 패에 참여한다,

사물놀이는 78년 공간사랑 ‘전통음악의 밤’에서 김덕수와 이광수, 고 김용배, 최종실 등 네 명의 젊은이들이 뿌리 깊은 장인의 솜씨로 우리에게 잊혀져가는 가락의 깊은 멋을 처음으로 ‘사물놀이’라는 이름을 붙여 공연한 것이 출발점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최 교수는 이후 서울예술단 가무악 조감독을 거쳐 2002년부터 중앙대 국악대학 타악연희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3년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축제 예술 감독과 중앙대 세계타악연구소장 겸 중앙타악연희단 예술 감독을 지낸 최 교수는 2015년부터 올해 초까지 서울예술단 예술 감독을 역임했다. 

[이 게시물은 산청시대님에 의해 2018-07-30 17:35:08 특집에서 복사 됨] http://scsnews.kr/bbs/board.php?bo_table=B26&wr_id=136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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