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식 산청부군수에게 듣는다

산청시대 2017-07-03 (월) 00:43 5년전 3073  

“고향 봉사 1년은 가장 보람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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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면 창주 출신‥78년 공직 입문
28년 만에 ‘금의환향’ 부군수 근무

 

부족한 재정, 정부 공모사업 비중
소규모 댐·지리산케이블카 절실

 

공직자는 멀리 보고 업무 임해야
“퇴직 이후 고향에서 노력하겠다”

 

민정식(57) 제26대 산청 부군수가 지난해 6월 27일 취임하면서 1주년을 맞았다.
민 부군수는 금서면 창주마을 출신으로 매촌초등학교와 산청중학교, 산청고등학교를 나와 78년 공직에 입문했다.
경남대학교 행정대학원(석사)을 졸업하고 2013년 서기관으로 승진한 민 부군수는 경남도립 남해대 사무국장과 경남도청 체육지원과장, 문화예술과장을 역임하고 고향 근무를 시작했다.
<산청시대>는 민정식 부군수의 산청군 업무 1년의 희로애락을 들어보았다.

 

-취임 1년의 소회를 말씀하신다면.
“공무원으로서 첫 출발을 고향에서 시작했다. 그 이후 도청으로 떠난 지 28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다. 동료직원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며 지내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지난 1년의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가버려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고향에 돌아와 봉사한 지난 1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가장 보람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고향에서의 업무 수행에 애로사항은 없었나.
“고향에서 즐겁게 일하다 보니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주민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 노력했는데 오히려 주민 분들이 많이 이해해 주시고 도와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어떤 업무에 중점을 두셨는지 궁금하다.
“부자산청, 교육산청, 녹색산청, 관광산청이라는 허기도 군수의 군정 철학에 발맞춰 청정하고 살기 좋은 산청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정부 공모사업에 비중을 두고 부자 산청을 만들기 위해 힘썼다.”

 

-산청발전에 필요한 사업은 무엇인지.
“최근 유래 없는 가뭄으로 농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우리 산청은 현재까지는 가뭄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가뭄이 계속된다면 피해가 우려된다. 홍수, 가뭄 등에 대비할 수 있는 소규모 댐 사업이 절실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일부 환경단체 등이 소규모 댐 건설을 반대해 무척 아쉬운 마음이다. 또 지리산을 중심으로 하는 관광산업이 한 단계 더 발전하는 계기를 맞기 위해 ‘지리산케이블카 사업’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그러나 중앙부처의 난색 표명 등으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해 안타까운 심정이다.”

 

-공직에 입문한 동기가 있나.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취업을 위해 공직에 들어서게 됐다. 그러나 오랜 시간 다양한 업무를 접하면서 공직자로서 보람과 긍지를 느끼며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다.”

 

-좌우명을 소개하신다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을 개인적으로 참 좋아한다. 글에 담긴 뜻처럼 매사에 항상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려고 힘쓴다.”

 

-후배 공직자들에게 당부하고 말은.
“당장 눈앞의 이익을 취하려 하면 어떤 일도 성공하지 못한다. 항상 멀리 내다보고 항상 충실히 업무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선후배간, 그리고 동료들과 믿음과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
“산청의 발전을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열심히 노력해준 동료직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특히 많은 조언과 협력을 아끼지 않으신 의원님들께도 진심을 담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지난 1년간 고향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다소 모자란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항상 지나고 나면 아쉬움이 남는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고향을 위해 힘쓰겠다. 퇴직 이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소박하게 살아가고 싶은 소망이다.”

 

 

 

민정식 부군수의 ‘아름다운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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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모자가정 아들 병역면제 해결
17년 지나 받은 두 마리의 생선 선물

평생을 가도 잊히지 않는 감사한 선물이 있었다. 바로 남해에 사는 백발의 할머니께서 건네주신 마른 생선 두 마리다.
17년 전 뇌졸중을 앓았던 이 할머니는 조금 부족하지만 소중한 하나 뿐인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 모자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 졌다. 아들에게 군 입대 영장이 나온 것.
할머니는 읍면과 군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뚜렷한 방법을 찾지 못해 당시 경남도청 감사부서에 근무하던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할머니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잊히지 않아 다음날 병무청을 찾아 사정을 설명하고 할머니와 연락을 취해 보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후 17년 동안 연락이 없어 잊고 살았다. 그러나 2014년 할머니로부터 연락이 닿았다. 할머니는 남해에서 버스를 3번이나 갈아타고 도청까지 왔다고 했다. 할머니는 당시 나의 작은 도움으로 아들이 병역면제를 받았다며 감사하다 말하며 울먹였다.
죽기 전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며 할머니가 건넨 검은 비닐봉지 안에는 마른 생선 두 마리가 들어 있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이후 나는 생애 최고의 선물을 주신 할머니의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냉장고에 생선을 넣어두고 보관하고 있다. 고향에 와서도 그 할머니를 생각하며 어려운 분들을 돕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그저 작은 도움을 드리는 것이지만 고맙다고 말씀해 주실 때 마다 공직자로서 보람을 느낀다.

 

 

[이 게시물은 산청시대님에 의해 2017-07-03 00:56:25 사람들에서 복사 됨] http://scsnews.kr/bbs/board.php?bo_table=B02&wr_id=91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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